brunch

정호승 시인의 '연어'를 문학평론가 김왕식 평하다

정호승 시인과 문학 평론가 청람 김왕식











연어



시인 정호승






바다를 떠나 너의 손을 잡는다
사람의 손에게 이렇게
따뜻함을 느껴본 것이 그 얼마 만인가 거친 폭포를 뛰어넘어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고통이 없었다면 나는 단지 한 마리 물고기에 불과했을 것이다
누구나 먼 곳에 있는 사람을 사랑하기는 쉽지 않다
누구나 가난한 사람을 사랑하기는 쉽지 않다
그동안 바다는 너의 기다림 때문에 항상 깊었다
이제 나는 너에게 가장 가까이 다가가 산란을 하고
죽음이 기다리는 강으로 간다
울지 마라
인생을 눈물로 가득 채우지 마라 사랑하기 때문에 죽음은 아름답다
오늘 내가 꿈은 네가 꾼 꿈의 그림자일 뿐 너를 사랑하고 죽으러 가는 한낮
숨은 별들이 고개를 내밀고 총총히 우리를 내려다본다
이제 곧 마른 강바닥에 나의 은빛 시체가 떠오르리라
배고픈 별빛들이 오랜만에 나를 포식하고 웃음을 터뜨리며 밤을 밝히리라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정호승 시인은 한국 현대 시문학에서 사랑과 고통, 삶과 죽음의 본질을 깊이 탐구해 온 시인이다. 그는 인생의 고난과 고통을 주제로 다루면서도 인간애와 따뜻한 희망을 잃지 않는 시적 세계를 구축하였다.
그의 시는 단순한 감정의 표현을 넘어선다. 일상적인 소재와 사소한 풍경 속에 숨겨진 인간 존재의 의미를 탐구하며, 독자들에게 깊은 감동을 준다. ‘연어’라는 시에서도 그러한 정호승의 시적 철학이 잘 드러난다. 바다를 떠난 연어의 여정을 통해 인간의 삶과 사랑, 고통과 희생, 그리고 죽음의 의미를 탐색하며, 모든 존재가 가진 본질적 귀환의 노정을 시적으로 형상화한다.

"바다를 떠나 너의 손을 잡는다"

첫 구절에서 ‘연어’는 바다를 떠나 누군가의 손을 잡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바다는 인생의 시작과 끝, 혹은 무한한 가능성의 세계로 볼 수 있다. 연어가 바다를 떠난다는 것은 익숙한 것을 벗어나 새로운 것에 다가가는 과정을 의미한다. 손을 잡는다는 것은 단순히 신체적 접촉이 아닌, 인간적인 연결과 따뜻함의 상징이다. 시인은 이 구절을 통해 독자에게 연어의 여정이 단순한 생물학적 귀환이 아니라, 감정적이고도 영적인 여정임을 암시한다.

"사람의 손에게 이렇게 따뜻함을 느껴본 것이 그 얼마 만인가"

이 행에서는 연어가 사람의 손을 통해 느끼는 따뜻함에 주목한다. 이는 자연과 인간의 연결을 상징하며, 오랜 시간 동안 잊고 지내던 인간적인 감정의 회복을 나타낸다. 연어는 고통스러운 여정을 통해 따뜻한 감정을 다시 느끼며, 이는 생명의 의미와 인간적 연대에 대한 은유로 해석될 수 있다.

"거친 폭포를 뛰어넘어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고통이 없었다면 나는 단지 한 마리 물고기에 불과했을 것이다"

연어의 여정은 힘든 고통을 수반한다. 거친 폭포와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모습은 삶의 어려움과 도전에 직면한 인간의 모습을 비유적으로 보여준다. 고통이 없었다면 연어는 단지 물고기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표현은, 고통이야말로 존재의 가치를 증명하고 인간성을 깊이 있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임을 시사한다. 이는 정호승 시인의 삶의 철학과 연결된다. 그는 고통과 어려움 속에서도 인간의 본질적인 가치를 잃지 않는 삶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누구나 먼 곳에 있는 사람을 사랑하기는 쉽지 않다 / 누구나 가난한 사람을 사랑하기는 쉽지 않다"

여기서는 사랑의 어려움과 그것이 지닌 진정한 의미를 탐구한다. 먼 곳에 있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과 가난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모두 쉬운 일이 아니다. 이는 사랑의 조건과 인간적 편견을 암시하며,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를 질문한다. 정호승 시인은 이 두 행을 통해 독자가 사랑의 본질에 대해 성찰하도록 유도한다.

"그동안 바다는 너의 기다림 때문에 항상 깊었다"

여기서 '바다'는 기다림의 공간으로 제시된다. 바다는 항상 깊다는 표현을 통해 기다림의 무게와 깊이를 강조하며, 인간의 감정이 얼마나 깊이 스며들 수 있는지를 시적으로 형상화한다. 기다림은 단순한 시간이 아닌, 감정의 축적과 변화의 과정임을 시사한다.

"이제 나는 너에게 가장 가까이 다가가 산란을 하고 / 죽음이 기다리는 강으로 간다"

연어는 이제 산란을 하러 가는 여정을 준비하며, 그것이 죽음을 향한 길이라는 것을 인식한다. 이 구절은 삶과 죽음의 순환, 그리고 사랑과 희생의 본질을 동시에 담고 있다. 사랑하기 위해 자신의 삶을 바치는 연어의 모습은 숭고한 자기희생과 같은 의미로 다가온다.

"울지 마라 / 인생을 눈물로 가득 채우지 마라 사랑하기 때문에 죽음은 아름답다"

시인은 울지 말라는 명령문을 통해 독자에게 감정적인 호소를 한다. 인생을 눈물로 채우지 말라는 구절은 고통 속에서도 긍정적인 삶의 태도를 강조한다. 사랑 때문에 죽음이 아름답다는 표현은, 사랑의 힘이 죽음의 두려움을 이길 수 있음을 시사하며, 이는 삶의 본질적인 가치와 연결된다.

"오늘 내가 꿈은 네가 꾼 꿈의 그림자일 뿐"

연어는 자신이 꾸는 꿈이 상대방이 꾸는 꿈의 그림자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이는 사랑의 연대와 상호 의존성을 암시하며, 한 개인의 꿈이 다른 이의 삶과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는 정호승 시인의 인간적 연대와 공동체 의식을 반영한 부분이다.

"너를 사랑하고 죽으러 가는 한낮 / 숨은 별들이 고개를 내밀고 총총히 우리를 내려다본다"

사랑하고 죽음을 향하는 시간적 배경으로 '한낮'을 설정하고, 숨은 별들이 내려다본다는 표현은 우주적 시각에서 인간의 삶과 죽음을 관찰하는 신비로운 장면을 연출한다. 이는 삶의 소중함과 그 안에 깃든 고독을 동시에 드러낸다.

"이제 곧 마른 강바닥에 나의 은빛 시체가 떠오르리라 / 배고픈 별빛들이 오랜만에 나를 포식하고 웃음을 터뜨리며 밤을 밝히리라"

이 시구는 연어의 죽음을 묘사하면서, 그 죽음이 단순히 끝이 아니라 새로운 의미와 변화를 가져오는 과정임을 암시한다.

“이제 곧 마른 강바닥에 나의 은빛 시체가 떠오르리라”라는 구절에서는 연어의 죽음을 "은빛 시체"라는 표현으로 시각화한다. 여기서 "은빛 시체"는 연어의 육체적 죽음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은빛'이라는 색채 이미지는 단순한 생물학적 죽음 이상의 아름다움을 강조한다. 이는 연어의 삶이 그 자체로 빛났으며, 죽음 역시 자연의 한 부분으로서 아름답고 고귀하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마른 강바닥"은 그가 생의 마지막을 맞이하는 장소로, 척박함과 메마름을 상징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곳이 연어가 긴 노정을 마무리하는 종착점임을 시사한다.

이어지는 "배고픈 별빛들이 오랜만에 나를 포식하고 웃음을 터뜨리며 밤을 밝히리라"는 구절은 죽음 후 연어가 자연의 일부로 돌아가 별빛에게 '포식'되는 장면을 그린다. "배고픈 별빛"이라는 표현은 밤하늘의 별들이 오랜 시간 기다려온 연어의 죽음을 마치 오래 굶주린 이가 음식을 기다리듯 반긴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는 죽음이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 즉 자연의 순환 속에서 또 다른 생명에게 에너지를 제공하는 행위로 확장된다.

별빛이 연어를 포식하며 "웃음을 터뜨리며 밤을 밝히리라"는 표현은 생명의 순환을 축복하는 듯한 이미지다. 연어의 죽음이 비극적이지 않고, 오히려 자연 속에서 웃음과 빛을 가져오는 요소로 묘사된다. 여기서 "웃음"은 연어의 죽음이 자연의 조화 속에서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변화를 만들어낸다는 점을 상징한다.

이 두 행은 연어의 죽음을 자연과 우주적 관점에서 바라보며, 죽음이란 단순히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자 다른 존재를 위한 희생의 과정임을 보여준다. 이는 정호승 시인이 전하고자 하는 삶과 죽음, 그리고 자연의 순환에 대한 철학적 사유를 잘 드러내는 부분이다.

정호승의 '연어'는 인간의 삶과 사랑, 고통과 희생, 그리고 죽음의 의미를 연어의 노정路程을 통해 깊이 있게 탐구하는 시다.

시인은 단순한 자연의 현상을 넘어선 상징적 언어를 통해 독자들에게 감정적 울림과 철학적 성찰을 동시에 제시한다. 각 행마다 정제된 언어와 은유를 통해 시적 긴장감과 생명력을 부여하며, 독자들에게 새로운 시각적 체험을 제공한다.

특히, 사랑과 죽음, 그리고 기다림에 대한 정호승의 독특한 시각은 시 전체의 유기적인 흐름을 이끌어가며, 삶의 본질에 대한 깊이 있는 사유를 가능하게 한다.

이는 정호승 시인의 독창적인 시 세계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이라 할 수 있다.



ㅡ청람

keyword
작가의 이전글보리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