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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장 시인의 '새치 염색'을 청람 평하다

청람 김왕식








새치 염색




시인 이오장







시간을 쓴다는 건 얼마나 고된 일이냐
새치를 가리던 은행나무가
단풍 든 모습을 드러냈다
바람에 밀려 슬쩍슬쩍 보여주던 고단을
우듬지마다 시간의 흔적으로 맺혔다
늙어 간다는 건 시간에 쫓긴다는 것
흘려보내나 붙잡으나
제 몸에 새긴 무게를 알아 간다는 것
그만큼의 길이와 넓이를
셈법 없는 계산으로 펼치는 일이다
젊음은 한때의 시간 쌓기
허물어져도 다시 쌓기는 충분하고
지운다 해도 돋아나는 것
서둘러 쫓아가도 붙들지 못하지
나이는 늦추고 따라가는 게 아닌
흐름을 알아본다는 것
통곡하고 웃어도 멈추지 않는다
산을 짊어진 삶일지라도
낙엽 한 장의 무게와 같을 뿐
가벼운 삶이 있겠는가
그 무게를 아는 은행나무가 천년을 사는 것
새치를 가린다고 시간이 멈추지 않는다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이오장 시인의 시 ‘새치 염색’은 작가의 삶과 철학이 깊이 배어 있는 작품이다. 이오장 시인은 현대 사회의 빠른 흐름과 개인의 시간이 지나가는 모습을 예리하게 포착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시를 통해 인생의 길이와 깊이를 가늠하고, 그 속에서 스스로의 존재를 깨닫는 과정을 천천히 그러나 확고하게 제시한다. 그의 시에서는 세월을 마주하는 자세와 나이 들어가는 과정의 무게를 묵직하게 다룬다. 시인에게 있어 늙어간다는 것은 단순히 육체의 변화가 아닌, 시간의 흐름 속에서 무언가를 잃고 얻는 고유한 체험의 연속이다. 그러한 과정에서 그는 고통과 기쁨, 웃음과 눈물을 모두 받아들이며 자신의 내면을 성찰하는 길을 걷는다.

"시간을 쓴다는 건 얼마나 고된 일이냐"

이 첫 행은 시간의 흐름을 단순히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쓴다'라는 표현을 통해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시간을 소비하는 행위를 지칭한다. 이는 시간과 삶이 동일한 궤적을 그리는 것이며, 인간이 시간의 흐름 속에서 자신을 깎고 다듬는 고된 과정을 의미한다. 여기서 시인은 시간의 쌓임을 한층 더 무겁고 소중한 것으로 여긴다.

"새치를 가리던 은행나무가 단풍 든 모습을 드러냈다"

여기서 ‘새치’는 세월의 흔적을 의미하며, ‘은행나무’는 이를 감추고자 하는 존재를 상징한다. 하지만 결국 은행나무가 단풍이 든 모습을 드러내듯이, 시인은 인간이 세월을 거스르고 시간을 감출 수 없음을 은유적으로 표현한다. 인간의 몸은 세월의 무게를 자연스럽게 드러내게 마련이다.

"바람에 밀려 슬쩍슬쩍 보여주던 고단을 우듬지마다 시간의 흔적으로 맺혔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처럼, 인간의 고된 삶의 모습이 드러나고 숨겨지며 반복된다. 그러나 그 고단함은 결국엔 나무의 우듬지마다, 즉 삶의 정상부마다 ‘시간의 흔적’으로 남는다. 시인은 여기서 시간의 축적과 그로 인한 피로의 흔적을 감각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시간은 결코 피할 수 없고, 그 흔적은 지워지지 않는다.

"늙어 간다는 건 시간에 쫓긴다는 것"

이 구절은 늙음이 단순한 신체적 변화가 아니라, 시간을 따라잡을 수 없는 경쟁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이는 인간이 생물학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항상 시간에 뒤처질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의미한다. 시인은 ‘시간에 쫓긴다’는 표현을 통해 시간의 흐름에 대한 인간의 무력함과 그것을 받아들이는 태도를 드러낸다.

"흘려보내나 붙잡으나 제 몸에 새긴 무게를 알아 간다는 것"

시간은 흘려보내거나 붙잡아도 결국엔 모두 지나가게 된다. 시인은 이러한 필연성을 인정하며, 인간은 지나간 시간의 무게를 고스란히 받아들이는 존재임을 이야기한다. 이는 시간과 삶의 무게를 인식하고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깨달음에 이르는 길임을 암시한다.

"그만큼의 길이와 넓이를 셈법 없는 계산으로 펼치는 일이다"

인생의 길이와 넓이는 수학적인 셈법으로 계산할 수 없는 것이다. 시인은 인생의 의미와 가치를 단순한 계산으로는 측정할 수 없음을 강조하며, 그것은 단순히 길거나 넓은 것이 아니라 그 속에 담긴 경험과 지혜, 고뇌와 기쁨으로 이루어진 복잡한 여정임을 말하고 있다.

"젊음은 한때의 시간 쌓기 허물어져도 다시 쌓기는 충분하고 지운다 해도 돋아나는 것"

여기서 젊음은 시간의 축적이며, 그것이 쉽게 사라지더라도 다시 쌓을 수 있는 유연함을 지닌다. 시인은 젊음의 재생 가능성을 언급하며, 그 자체가 하나의 자산임을 강조한다. 이는 세월이 지나면 없어지더라도 젊음의 본질은 쉽게 사라지지 않음을 나타낸다.

"서둘러 쫓아가도 붙들지 못하지 나이는 늦추고 따라가는 게 아닌 흐름을 알아본다는 것"

시간을 서둘러 따라가도 그 속도에 맞출 수 없음을 시인은 깨닫는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시간을 붙잡는 것이 아니라, 그 흐름을 인식하고 이해하는 것이다. 이는 인생의 철학적 통찰을 제시하며, 인간은 그저 시간을 흘려보내는 존재가 아니라, 그 흐름 속에서 의미를 찾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통곡하고 웃어도 멈추지 않는다 산을 짊어진 삶일지라도 낙엽 한 장의 무게와 같을 뿐 가벼운 삶이 있겠는가"

인생의 기쁨과 슬픔, 웃음과 눈물은 모두 시간이 멈추지 않음을 의미한다. 산처럼 무거운 삶이라 할지라도 결국에는 한 장의 낙엽처럼 떨어진다. 시인은 그만큼 삶이 무겁고 진지하다고 할지라도, 결국에는 그 모든 것이 하나의 순간일 뿐임을 암시하고 있다.

"그 무게를 아는 은행나무가 천년을 사는 것 새치를 가린다고 시간이 멈추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새치를 가린다고 해서 시간이 멈추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시인은 강조한다. 은행나무가 그 무게를 알고 천년을 살듯이, 인간도 자신이 짊어진 시간의 무게를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점을 시인은 전하고 있다. 이는 인간의 삶에 대한 깊은 성찰과 철학적 통찰을 담고 있다.

이오장 시인의 ‘새치 염색’은 시간과 삶, 젊음과 늙음의 관계를 깊이 있게 탐구하는 시다. 그는 시간을 주체적으로 받아들이며, 그 흐름 속에서 스스로의 존재를 찾고자 한다. 그의 표현은 간결하면서도 명료하며, 이미지의 힘이 강하게 드러난다. 시어 하나하나가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전체적으로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시인은 시간의 무게와 삶의 길이를 계산할 수 없는 가치로 치환하며, 이를 받아들이는 인간의 자세를 고찰하고 있다. 이 시는 시간의 흐름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그 안에서 자신의 삶을 성찰하는 모든 이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는 작품이다.





ㅡ 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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