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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 시인의 '장미꽃을 켜는 여자 '를 청람 평하다

이효 시인과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장미꽃을 켜는 여자


시인 이 효




소나무 숲에서 끊어진 기억
사무침이 깊어 고딕체가 된 꽃
여자의 징검다리는 벽 속에
갇혀 과거를 더듬는다
지나온 눈 맞춤은 어제의 과녁을 뚫는다
심장은 사랑에 관해 질문을 던진다
내 가슴에 블랙홀을 만들고 떠난 그
돌이킬 수 없는 우울의 침잠
마지막이란 입술을 읽다가 잠에서 깬다
슬픔을 기억하는 심장은 말을 아낀다
장미꽃을 다시 켜는 여자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이효 시인은 일상과 사색의 깊은 층을 표현하는 시인으로, 그의 시에는 삶의 슬픔과 기쁨이 교차하는 순간들이 섬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이러한 경험은 시적 언어를 통해 세밀하게 형상화되며, 삶의 고통과 치유에 대한 깊은 통찰을 보여준다. 특히 이효 시인의 시는 개인적 감정이 사회적, 존재적 성찰로 확장되는 특징을 보인다. '장미꽃을 켜는 여자'는 고통과 사랑, 상실과 재생의 이야기가 밀도 있게 담겨 있으며, 하나의 이미지가 여러 층위로 확장되는 시인의 독특한 표현 기법이 잘 드러난다.

'소나무 숲에서 끊어진 기억'

시의 첫 구절은 과거의 단절된 기억을 ‘소나무 숲’이라는 자연의 이미지와 결합한다. 소나무 숲은 영원하고 변하지 않는 것의 상징이지만, 여기서 기억은 단절되어 있다. 이 단절은 시인이 겪은 상실이나 아픔을 암시하며, 자연 속에서도 채워지지 않는 허무와 고독을 드러낸다.

'사무침이 깊어 고딕체가 된 꽃'

‘사무침’은 아픔이나 그리움의 깊은 감정을 뜻하며, 이것이 ‘고딕체’로 표현된다. 고딕체는 딱딱하고 정교한 서체로, 감정의 강도와 무게를 느낄 수 있게 한다. 시인은 꽃이라는 부드럽고 아름다운 대상을 통해 무겁고 날카로운 감정을 표현하며, 사랑의 고통이 얼마나 깊게 새겨져 있는지를 보여준다.

'여자의 징검다리는 벽 속에 갇혀 과거를 더듬는다'

여자의 삶은 징검다리처럼 연속적이지만, 그것이 벽에 갇혀 있다. 벽은 과거의 트라우마나 상처를 상징하며, 그녀는 그것에 의해 발목이 잡혀 과거를 더듬고 있다. 이 문장은 여성의 상실과 고통을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을 섬세하게 그린다.

'지나온 눈 맞춤은 어제의 과녁을 뚫는다'

여기서 ‘눈 맞춤’은 사랑의 순간이나 관계를 의미하며, 과녁은 그 사랑이 가졌던 목표나 열망을 뜻한다. 이 시구는 그 관계가 얼마나 깊이 각인되었는지, 그리고 그것이 현재에도 얼마나 영향력을 발휘하는지를 드러낸다.

'심장은 사랑에 관해 질문을 던진다'

심장은 사랑의 진정성과 의미에 대해 끊임없이 묻고 있다. 이는 사랑에 대한 의구심과 갈망, 그리고 그로 인해 생기는 고통을 동시에 내포한다. 사랑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철학적 질문이 여기 담겨 있다.

'내 가슴에 블랙홀을 만들고 떠난 그'

‘블랙홀’은 모든 것을 삼켜버리는 공허의 상징이다. 사랑의 상실로 인해 시인의 가슴에는 공허함이 생겨났고, 그 상실의 고통은 감당할 수 없는 깊은 아픔으로 나타난다. 시의 화자는 이 공허를 통해 그리움과 상처의 크기를 드러낸다.

'돌이킬 수 없는 우울의 침잠'

상실 후의 우울은 돌이킬 수 없다. 이미 지나가 버린 과거와 그로 인해 생긴 우울은 되돌릴 수 없는 것으로, 시인의 슬픔은 깊이 잠겨 있다. 이 구절은 현실의 비극성과 무상함을 여실히 드러낸다.

'마지막이란 입술을 읽다가 잠에서 깬다'

마지막이라는 단어는 종결과 끝을 상징하며, 시인은 그 마지막 순간을 계속 떠올리고 있다. 그러나 그 마지막을 읽다가 문득 잠에서 깬다는 것은 현실과 꿈의 경계에서 깨어나는 순간을 의미하며, 상실의 아픔을 극복하고자 하는 시인의 의지를 보여준다.

'슬픔을 기억하는 심장은 말을 아낀다'

슬픔이 깊은 사람은 그 감정을 쉽게 말하지 않는다. 그 슬픔은 내면 깊이 잠겨 있으며, 쉽게 표현될 수 없는 것이다. 시인은 슬픔을 말로 풀어내기보다는 내면 깊숙이 감추며, 그로 인해 더욱 강렬한 감정을 느끼게 한다.

'장미꽃을 다시 켜는 여자'

마지막 구절에서 시인은 ‘장미꽃을 켠다’고 표현한다. 이는 슬픔을 극복하고 다시 삶을 시작하는 행위로 볼 수 있다. 장미는 사랑과 열정을 상징하지만 동시에 가시에 찔리는 아픔도 내포한다. 시인은 그 아픔을 딛고 다시 일어나 새로운 빛을 밝히려는 의지를 보여준다.

'장미꽃을 켜는 여자'’는
상실과 슬픔, 그리고 그 속에서 재생하고자 하는 의지를 담아낸 시이다.
이효 시인은 감정의 깊이를 고딕체와 블랙홀 같은 이미지로 표현하여, 슬픔과 사랑의 무게를 절묘하게 그려낸다. 특히 감정의 변화와 이미지의 유기적인 흐름을 통해 시적 울림을 강화하고 있다. 시에서 사랑과 슬픔은 결코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본질과 삶에 대한 깊은 성찰로 확장된다.
시인은 슬픔을 기억하고, 그 슬픔을 다시 피워내는 과정을 통해 삶의 재생과 극복을 노래한다. 간결하고 힘 있는 문장으로 이루어진 이 시는 독자에게 공감과 위로를 전하며, 삶의 고통 속에서도 다시 피어나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준다.





ㅡ 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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