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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일 시인의 '갈대'를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평하다

김선일 시인과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갈대



시인 성훈 김선일






하늘 높아져
햇살 무디어지고
살짜기 다가온 건들바람이
갈바람으로 갈아탄다

꼿꼿이 하늘 쳐다보던 초록
어느새
겸허의 미덕 채우고
들판 널리 고개 숙인다

해변 병정으로
파수꾼되어 여과시키고
하늬바람에 하느적이어
잔잔한 바다 머뭇거리게 한다

오가는 청춘 안식처
스스럼없는 틈새
물오리 쉬어 가는
사랑스러운 그 강인함이 노을빛 탄다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성훈 김선일 시인은 오랜 시간 자연을 벗 삼아 살아온 시인으로, 그의 삶은 자연과 인생의 조화로운 결합을 이루는 데에 깊이 연관되어 있다.
도시의 복잡함과 인간의 욕망으로부터 벗어나 자연의 한 부분으로 존재하려는 그의 삶은 시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특히 갈대의 모습과 시인의 자아가 교차하며 표출되는 이 시는 시인의 삶과 철학을 자연스럽게 녹여낸 작품으로, 겸허함과 자연스러움을 강조하는 시인의 가치관을 엿볼 수 있다.

"하늘 높아져 / 햇살 무디어지고 / 살짜기 다가온 건들바람이 / 갈바람으로 갈아탄다"

첫 연은 갈대의 성장과 변화의 과정을 표현한다. 가을로 접어들며 하늘이 높아지고 햇살이 부드러워지면서 갈대의 환경 또한 변한다. "살짜기 다가온 건들바람"은 가벼운 바람이 갈대를 흔들며 변화의 시작을 알리는 모습이다. '갈바람'으로의 변환은 그 바람이 더욱 선명해지고 갈대에 대한 변화의 압박이 강해짐을 의미한다. 이러한 변화의 서술은 삶의 이치, 계절의 순환, 그리고 한 생명체의 성숙을 감각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꼿꼿이 하늘 쳐다보던 초록 / 어느새 / 겸허의 미덕 채우고 / 들판 널리 고개 숙인다"

두 번째 연은 갈대가 성장의 정점을 지나 성숙과 겸허의 단계로 진입하는 모습을 그린다. "꼿꼿이 하늘 쳐다보던 초록"은 푸르게 하늘을 향해 솟아 있던 젊은 갈대의 모습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겸허의 미덕"을 채우며 고개를 숙이는 모습은 노년의 겸손함과 인생의 순환을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들판에 널리 고개 숙인 모습은 자연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자각하는 인간의 모습과도 비견될 수 있으며, 생명이 겪는 피할 수 없는 흐름에 대한 수용의 자세를 보여준다.

"해변 병정으로 / 파수꾼되어 여과시키고 / 하늬바람에 하느적이어 / 잔잔한 바다 머뭇거리게 한다"

세 번째 연에서는 갈대가 해변에서 파수꾼의 역할을 하는 모습이 묘사된다. 바닷바람을 맞으며 해변을 지키는 갈대는 고난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인내와 강인함을 상징한다. "파수꾼되어 여과시키고"라는 구절은 갈대가 외부의 거친 바람을 자신을 통해 걸러내는 과정으로, 이는 인생의 시련을 겪어내고 그것을 통해 더 단단해지는 인간의 모습을 투영한다. "잔잔한 바다 머뭇거리게 한다"는 구절은 갈대의 존재감이 바다의 흐름을 일시적으로 멈추게 하는 강한 영향력을 보여주며, 삶의 강인한 존재감과 그 고유의 아름다움을 강조한다.

"오가는 청춘 안식처 / 스스럼없는 틈새 / 물오리 쉬어 가는 / 사랑스러운 그 강인함이 노을빛 탄다"

마지막 연에서는 갈대의 포근한 역할이 드러난다.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 사이사이는 "청춘의 안식처"로 묘사되며, 그 틈새에서 물오리와 같은 생명들이 잠시 쉬어간다. 이는 갈대의 유연함과 포용력을 상징하며, 이는 마치 청춘들이 잠시 기댈 수 있는 안식처와도 같은 존재로 비친다. 이러한 갈대의 모습은 삶의 여유와 사랑스러움을 담아내며, "노을빛 탄다"는 표현으로 그 강인함과 아름다움이 황혼에 물들어가듯 깊이 있게 묘사되고 있다.

김선일 시인의 이 시는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갈대의 생애를 통해 삶의 겸허함, 인내, 그리고 순환하는 자연의 흐름을 심미적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갈대의 변화는 시인이 살아가며 마주한 삶의 여러 순간들과 닮아 있다. 갈대의 뿌리내린 모습은 굳건한 의지와 인내를 상징하며, 바람에 흔들리면서도 꺾이지 않는 그 강인함은 삶을 견뎌내고 살아가는 힘을 나타낸다.
또한 갈대의 고개 숙임은 겸허한 삶의 자세를 뜻하며, 청춘의 안식처가 되는 갈대의 역할은 포용과 위안을 주는 존재로 그려진다. 이러한 표현을 통해 시인은 자연과 인간의 삶을 하나로 아우르며 그 속에 담긴 철학적 가치와 미학적 아름다움을 유기적으로 결합시킨다.

이 시는 시각적 이미지를 중심으로 감성을 일깨우며, 동시에 시인의 가치관과 삶의 태도를 은유적으로 드러낸다. 각 연에서 갈대의 성장을 그리고 고난을 견디는 모습은 단순히 자연의 묘사에 머물지 않고, 이를 통해 인생의 본질과 가치를 성찰하게 한다. 시인은 간결하고도 섬세한 표현을 통해 자연과 삶의 본질을 깊이 있게 그려내며, 그 속에서 얻을 수 있는 통찰과 겸허함을 독자에게 전하고 있다.




ㅡ 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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