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평론가 청람 김왕식 Oct 5.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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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춤의 미학
김왕식
세상에 수많은 사람들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살아간다. 모두가 자신만의 시각과 삶의 태도를 가지고 세상을 해석하고 그에 따라 행동한다. 그중에서도 자신이 세상의 중심이라 믿고, 스스로를 높이려는 사람들을 우리는 종종 마주친다. 이러한 태도는 현대 사회에서 흔히 "자존감" 혹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으로 포장되어 긍정적으로 여겨지곤 한다.
나는 이러한 태도에 의문을 던진다. 과연 나를 중심에 두고 높이는 것만이 우리 삶의 올바른 방향일까?
사람은 본래 스스로를 귀하게 여기고 싶은 본능이 있다. 인정받고 사랑받고 싶은 욕망은 누구에게나 있다.
나가 모든 것의 중심이 되겠다는 마음은 타인의 빛을 바라볼 수 있는 여유를 잃게 한다. 스스로 높이 올라가 세상을 바라보면, 마치 산 정상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듯 시야는 한쪽으로 쏠리고, 세부적인 것은 보이지 않으며 멀리서 큰 흐름만이 잡힌다. 이는 다른 사람들의 장점이나 그들이 가진 고유한 매력을 미처 알아보지 못하게 만든다.
반면, 나를 낮추는 것은 고개를 숙이는 겸손의 자세를 의미한다. 마치 나무가 바람에 따라 부드럽게 흔들리듯, 내 자신을 유연하게 낮출 때 우리는 상대의 모습을 똑바로 바라볼 수 있다. 이를 통해 타인의 장점을 바라보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이 지닌 소중한 가치들을 발견할 수 있게 된다.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은 결국 내가 어디에 서서 어떤 시각으로 세상을 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나를 조금 낮추면 시야는 자연스럽게 넓어진다.
나를 낮춘다는 것은 곧 자신을 포기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겸손하게 자신을 낮춘다는 것은 내 안에 있는 고정관념과 편견을 내려놓고, 타인의 관점에서 세상을 보고 배우겠다는 열린 마음을 갖는 것이다. 자신을 낮춤으로써 세상과 다른 사람의 가치에 귀 기울이고, 그들의 이야기를 존중하는 힘을 기르게 된다. 이는 곧 내가 더 풍요로운 삶을 살고, 나 자신을 더욱 성장시킬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나를 중심에 두는 삶은 단순히 내 시선에 갇혀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지만, 타인의 장점을 발견하고 그들을 인정하는 삶은 우리를 더 넓고 깊은 세계로 이끈다.
나는 이 과정이 연못과도 같다고 생각한다. 깊이를 알 수 없는 맑은 연못이 나를 비추고 있을 때, 우리는 때때로 그 맑음 속에서 우리의 얼굴만을 바라본다. 그리고 그것을 더 뚜렷하게 보이게 하기 위해 주변의 모든 것들을 희미하게 만들어버린다. 내가 연못에 얼굴을 가까이 대어 조금 낮춰 보면, 물속에 숨겨진 다양한 생명과 수많은 빛의 반사를 발견할 수 있다. 낮춰 본다는 것은 결국 나를 더 선명히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연못 속에 숨겨진 풍경들을 더 선명하게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겸손은 타인과의 관계를 더욱 건강하게 만든다. 누군가의 장점을 바라보는 일은 그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마음을 품게 한다. 그를 통해 배우고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누군가의 말에 귀 기울이고 그가 가진 지혜나 경험을 받아들이는 것은 내 삶을 더욱 다채롭게 만드는 일이기도 하다.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 나와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마주했을 때, 그들을 나의 잣대로 평가하거나 단순히 흠집을 찾아내려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가치와 장점을 발견하려 노력해 보자. 그럴 때 우리 삶의 모습은 더욱 풍요롭고 아름다워진다.
낮춤의 미학은 겸손함 속에서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이를 통해 얻는 것은 단순히 나를 낮추는 데서 오는 작고 왜소한 모습이 아니다. 오히려 나를 낮춤으로써 내가 더 넓은 세상과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는 것이다. 나를 중심에 두는 것이 아닌, 내가 중심에서 물러남으로써 그 빈자리에 새로운 시각과 가치가 채워질 수 있다. 그렇게 될 때 내 삶은 더 이상 나 혼자의 것이 아닌, 타인과 함께 어우러진 아름다운 공존의 모습이 된다.
우리는 자신의 높낮이만 생각하며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때때로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들의 높낮이에도 주목해야 한다. 타인의 빛이 나를 비출 때, 그리고 내가 그 빛을 받아들일 때, 우리는 서로에게 더 큰 영감을 줄 수 있다. 나를 낮춤으로써 얻는 것은 결코 작거나 부족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안에는 나를 더 크게, 더 아름답게 빛나게 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이 숨어 있다.
ㅡ 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