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평론가 청람 김왕식 Oct 5.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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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물차 운전수
안최호
새벽을 깨우는 첫 빛이 내리는 아침, 태양은 마치 손에 닿을 듯이 가까이 있고, 그 빛은 눈이 부실 만큼 강렬하다. 창밖으로는 청아한 참새 소리가 들려오고, 그 소리에 세상이 깨어나는 듯하다. 장심리의 아침이 시작되면 이곳이 온전히 나의 세상처럼 느껴진다.
맑은 아침의 공기는 유난히 상쾌하다. 이슬이 맺힌 잎새는 수정처럼 맑은 방울을 만들어내며, 그 빛나는 이슬은 영롱한 보석처럼 빛난다. 자연의 아름다움이 펼쳐지는 이 순간이야말로 나를 감동시킨다. 냇가를 따라 흐르는 시냇물은 목적도 방향도 없이 그저 흘러간다. 어디를 향해 가는지 알 수 없지만, 그 자유로운 흐름이 오히려 정겹고 평온하다.
간간히 떨어지는 단풍잎을 바라본다. 그 잎들이 어디로 가는지, 누구를 찾아가는지 알 수 없지만, 그저 조용히 떨어져 간다.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떠나는 단풍잎의 모습은 차라리 미련 없이 떠나는 이별과 닮아 있다. 그 모습이 고독하게 서 있는 나에게 위안이 되기도 한다. 어차피 인생이란 오거든 받아들이고, 가거든 보내주는 그런 흐름이 아니겠는가. 그저 마음을 비우고, 떠나고 오는 일에 연연하지 않으며 살 수 있기를 바란다.
장심리 산자락의 뒤편에서 오늘도 떠오르는 태양을 맞이하고, 저무는 석양을 마주한다. 그리고 이렇게 또 하루가 지나가며, 장심리의 아침을 열고 세상을 바라보는 나는 생각한다. 나는 자연의 일부로서 그 속에 살고 있다. 자연 속에서 숨 쉬고, 바라보며, 그 풍경에 스며들어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이곳에만 머무를 수는 없다. 오늘도 나의 애마인 독일산 MAN 트럭을 몰고 전국을 떠도는 방랑객이 된다. 마치 마부가 말을 타고 광야를 달리듯이, 나는 나의 길을 향해 출발한다. 그리고 달리기 시작하면 비로소 깨닫는다. 모든 것이 내 아래에 있음을, 모든 세상이 나의 길 위에 펼쳐져 있음을.
스쳐 지나가는 수많은 승용차 지붕 위를 내려다보며 달리는 내 트럭의 위엄을 느낀다. 세상 모든 것이 내 발 밑에 있는 듯한 해방감이 나를 휘감고, 나는 스스로의 자유를 만끽하며 웃음을 터뜨린다. "으하하! 푸하하하!" 욕망이 넘치는 도로를 시원하게 달리며, 마치 모든 것이 나에게 열려 있는 듯하다. 내가 달리는 길은 인생이자 자유다. 팔도를 넘나들며, 때로는 이런 인생 저런 인생을 바라보고, 풋풋한 세상 풍경을 맛보며 나는 오늘도 트럭을 몰아본다.
오늘은 이곳에서, 내일은 저곳에서. 남부러울 것 없는 나만의 세상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무궁무진한 자유가 펼쳐진 나의 삶은 방랑객의 호사다. 오늘도 달린다. 머무는 곳, 그곳이 내 고향이고 내 사랑이다. 달려보자. 내 사랑, 나의 애마인 MAN 트럭이여, 오늘도 힘차게 달려보자. 그곳이 내 마지막 도착지가 될 때까지 나는 계속 달린다.
나는 화물차 운전수다.
삶의 자유를 만끽하며, 그 누구에게도 얽매이지 않는 나만의 길을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