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인가
박철언 시인과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by 평론가 청람 김왕식 Oct 8.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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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인가
시인 박철언
상쾌한 바람결, 햇살은 따스하고
하늘은 유난히 맑고 푸르다
산과 숲과 나무가 온통
화장을 하고 있다
아! 가을인가
영근 알밤 대추와 홍시는 지천인데
자꾸만 쓸쓸해지고 허전한 가슴
아, 이 가을에는
누군가를 사랑하고 싶다
일상의 굴레를 벗어나
어디론가 떠나가고 싶다
황홀한 신비의 낯선 세계로!
이 가을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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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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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언 시인은 자연과 인생을 주제로 삶의 깊은 통찰을 담아내는 중진 작가이다. 그의 시에는 삶의 소소한 순간들이 투영되어 있으며, 그 안에 내재된 자연의 순환과 삶의 깊은 고뇌를 조화롭게 담아내는 것이 특징이다.
그는 특히 계절의 변화와 인간의 내면적 변화를 섬세하게 결부시켜 시적 언어로 형상화하는데,
"가을인가"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그의 삶의 철학과 시선이 드러난 작품이다.
이 시는 가을이라는 계절의 정취를 감각적으로 포착하며, 동시에 그 안에 스며있는 인간의 감정, 사랑에 대한 갈망, 일상 탈피에 대한 열망 등을 표현하고 있다.
“상쾌한 바람결, 햇살은 따스하고 / 하늘은 유난히 맑고 푸르다 / 산과 숲과 나무가 온통 / 화장을 하고 있다 / 아! 가을인가”
첫 연은 가을의 생생한 모습을 구체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바람의 상쾌함과 따뜻한 햇살, 맑고 푸른 하늘은 독자로 가을의 청량감을 직접적으로 느끼게 한다. 여기서 "화장을 하고 있다"라는 표현은 가을의 자연이 자신을 단장하며 아름답게 변화하는 모습을 의인화한 것이다. 이는 가을이 단순한 계절적 변화만이 아니라 생명의 아름다운 순환을 나타내며, 시인은 그 변화를 바라보는 감탄을 감각적인 언어로 표현하고 있다.
마지막에 "아! 가을인가"라는 감탄은 이러한 아름다움에 대한 경이로움과 함께, 순간의 깨달음이 감정을 울림 있게 전하고 있다.
“영근 알밤 대추와 홍시는 지천인데 / 자꾸만 쓸쓸해지고 허전한 가슴 / 아, 이 가을에는 / 누군가를 사랑하고 싶다”
가을의 풍성함은 첫 구절에서 드러난다. “영근 알밤 대추와 홍시”는 가을의 수확과 결실을 상징하며, 풍요로운 자연의 모습을 제시한다. 그러나 이러한 풍요로움에도 불구하고 화자의 내면은 쓸쓸함과 허전함으로 채워져 있다. 이는 가을의 이중적인 성격을 나타내며, 자연의 풍요와 대비되는 인간의 내면적 공허함을 표현한다. 이러한 쓸쓸함은 사랑을 향한 갈망으로 이어지는데, 이는 인간의 본성적인 감정이다. 가을이 깊어짐에 따라 화자는 누군가를 사랑하고자 하는 욕망에 사로잡히며, 이는 가을의 감성적인 측면과 화자의 개인적인 내면의 욕구가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있다.
“일상의 굴레를 벗어나 / 어디론가 떠나가고 싶다 / 황홀한 신비의 낯선 세계로! / 이 가을에는”
이 연에서는 일상의 굴레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화자의 욕망이 두드러진다. 단순히 현재의 지루하고 반복되는 삶에서 벗어나, 낯선 세계로 떠나고 싶다는 갈망은 인간의 근원적 욕망 중 하나로 볼 수 있다. "황홀한 신비"라는 표현은 일상에서 경험할 수 없는 특별한 세계를 꿈꾸는 화자의 열망을 강조하며, 이를 통해 가을이 지닌 변화를 통한 가능성,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동경을 시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이는 일상과 대비되는 꿈과 현실의 간극을 통해 가을이라는 계절이 일상 속에 주는 새로움과 변화의 가능성을 나타낸다.
박철언 시인의 "가을인가"는 가을의 감각적 이미지와 그에 따른 인간의 내면적 정서를 밀도 있게 결합한 시이다. 자연의 순환과 그 안에 내재된 삶의 아름다움을 예민한 시선으로 포착하고, 이를 통해 인간의 보편적 감정인 쓸쓸함, 사랑에 대한 갈망, 일상 탈피에 대한 욕구를 섬세하게 담아내고 있다. 시에서 묘사되는 자연의 이미지들은 일상적이면서도 그 안에 내포된 감정과 감각들이 독자의 공감을 이끌어내며, 이를 통해 가을의 계절감뿐 아니라 인간의 내면적 깊이를 함께 느끼게 한다. 특히 이 시는 표현의 간결함과 명료함으로 시의 이미지를 선명하게 그려내고 있으며, 가을의 생동감 있는 변화를 화자의 감정과 조화롭게 연결하고 있다. 가을을 단순한 자연의 변화로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인간의 다양한 감정과 삶의 철학을 투영하며, 짧은 시 속에서 시인은 인생에 대한 긍정적이면서도 진중한 통찰을 드러내고 있다. "가을인가"는 자연을 통한 감각적 이미지와 인간의 내면적 갈망을 유기적으로 결합한 박철언 시인의 섬세한 시적 세계를 잘 드러내는 작품으로, 독자들에게 계절의 변화를 통해 삶을 되돌아보게 하는 여운을 준다.
ㅡ청람 김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