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길 걸으며 ㅡ 시인 주광일
주광일 시인과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by 평론가 청람 김왕식 Oct 9.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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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길 걸으며
시인 주광일
어쩐지 섬뜩한 일이 터질 것 같은 가을길을 나는 걷고 있다. 소망이 간절하면 간절할수록, 그 소망은 점점 더 이루어지기 어렵게 여겨지는 가을날, 온종일 혼자 걸으며 쉴 새 없이 기도해도, 끊임없이 귓전에 맴도는 시끄러운 세상소리.
이제 이 세상은 끝내 간절한 기도조차 부질없게 된 절망의 깊은 수렁에 빠지고만 것인가?
어차피 속수무책인 나는 두 손을 모으고 이 길을 계속 걸을 수밖에 없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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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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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광일 시인은 평생을 소외된 이웃과 함께하며 그들의 고통을 자신의 삶으로 체험한 중진 시인이다. 그는 깊은 절망 속에서도 인간 본연의 희망을 잃지 않으려는 노력과, 그 과정에서 느낀 불안과 고뇌를 시에 담았다. 주광일의 삶은 끊임없이 기도하고 소망하는 과정에서 불확실함과 절망을 마주했지만, 끝까지 그 길을 포기하지 않고 걸어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러한 삶의 태도는 그의 시에서 두드러지며, '가을길 걸으며' 또한 그 고통스러운 길 위에서 희망을 찾으려는 시인의 모습이 투영되어 있다.
"어쩐지 섬뜩한 일이 터질 것 같은 가을길을 나는 걷고 있다."
이 첫 구절에서 느껴지는 섬뜩함은 시인이 느끼는 불안한 현실을 상징한다. 가을은 흔히 수확과 성찰의 계절로 묘사되지만, 여기서는 어둡고 불안한 분위기로 전개된다. 섬뜩함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에서 비롯된 감정으로, 시인의 내면에서 불안한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 이 구절을 통해 시인은 앞으로 벌어질 일에 대한 두려움과 경계를 암시하며, 독자에게 긴장감을 부여한다.
"소망이 간절하면 간절할수록, 그 소망은 점점 더 이루어지기 어렵게 여겨지는 가을날, "
이 부분은 간절한 기도와 소망의 역설을 표현하고 있다. 희망이 클수록 그 희망이 성취되지 않을 것 같은 절망감이 더 커지는 모습을 보여준다. 가을이라는 계절의 특성이 여기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풍요의 계절이지만 동시에 이별과 쇠락을 상징하는 가을은 시인의 고통과 좌절을 증폭시키는 배경으로 작용한다.
"온종일 혼자 걸으며 쉴 새 없이 기도해도, 끊임없이 귓전에 맴도는 시끄러운 세상소리."
여기서는 외부와 단절된 듯한 시인의 고독한 기도의 모습이 그려진다. 그 기도조차 세상의 소음에 묻히고, 시인은 혼란 속에서 고요한 평안을 찾기 어려워한다. 이 행은 세상의 소음과 시인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갈등을 강조하며, 세상 속에서 신앙적 구원의 길을 찾기 어려워하는 현실을 나타낸다.
"이제 이 세상은 끝내 간절한 기도조차 부질없게 된 절망의 깊은 수렁에 빠지고만 것인가?"
시인은 기도의 무력함과 절망에 빠진 세상을 묘사한다. 간절한 기도마저도 허무하게 느껴지는 순간을 경험하며, 더 이상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 없음을 절감한다. 이 부분에서 시인은 종교적 신념과 현실 사이의 갈등을 심도 있게 드러낸다.
"어차피 속수무책인 나는 두 손을 모으고 이 길을 계속 걸을 수밖에 없구나."
마지막 구절은 시인의 체념과 동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걸어가야 하는 인간의 숙명을 담고 있다. 비록 아무것도 바꿀 수 없는 상황이라 하더라도, 시인은 기도를 멈추지 않고 자신의 길을 계속 걸어야 한다고 다짐한다. 이 행은 인간이 극복해야 하는 불가항력적인 현실을 받아들이는 자세를 보여준다.
주광일 시인의 시의 '가을길 걸으며'는 깊은 절망 속에서도 길을 걸어가야만 하는 인간의 모습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가을이라는 배경은 시인의 내면 풍경을 더욱 극적으로 표현하며, 소망과 기도의 역설적인 무력함을 드러낸다.
시인은 삶의 불확실성과 절망에 맞서기도 하지만, 결국 체념하고도 계속 기도하며 걸어가야 하는 인간의 숙명을 받아들인다.
이 작품은 시인의 섬세한 표현력과 감성적 이미지로 독자에게 깊은 여운을 남긴다. 동시에, 시인은 기도라는 행위를 통해 절망을 이겨내고자 하는 인간의 고뇌를 탐구하며, 자신의 가치 철학을 담아내고 있다.
ㅡ 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