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작가의 시 '괜찮아'를 문학평론가 김왕식 평하다
한강 시인과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by 평론가 청람 김왕식 Oct 11.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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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시인 한강
태어나 두 달이 되었을 때
아이는 저녁마다 울었다
배고파서도 아니고 어디가
아파서도 아니고
아무 이유도 없이
해 질 녘부터 밤까지 꼬박 세 시간
거품 같은 아이가 꺼져버릴까 봐
나는 두 팔로 껴안고
집 안을 수없이 돌며 물었다
왜 그래.
왜 그래.
왜 그래.
내 눈물이 떨어져
아이의 눈물에 섞이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말해봤다
누가 가르쳐준 것도 아닌데
괜찮아.
괜찮아.
이제 괜찮아.
거짓말처럼
아이의 울음이 그치진 않았지만
누그러진 건 오히려
내 울음이었지만, 다만
우연의 일치였겠지만
며칠 뒤부터 아이는 저녁 울음을 멈췄다.
서른 넘어야 그렇게 알았다
내 안의 당신이 흐느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울부짖는 아이의 얼굴을 들여다보듯
짜디짠 거품 같은 눈물을 향해
괜찮아.
왜 그래, 가 아니라
괜찮아.
이제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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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가ㆍ시인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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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시인의 시 「괜찮아」는 그의 삶과 깊은 연관을 맺고 있다. 한강은 삶의 고통과 인간 내면의 슬픔에 대해 지속적으로 탐구해 왔다. 그의 문학 세계는 삶의 어두운 측면을 직시하되, 그 속에서 위로와 치유를 찾으려는 태도를 보여준다. 이 시에서도 한강은 자신과 타인, 특히 '아이'를 통해 삶의 고통을 직시하면서도, 결국 그 고통을 '괜찮아'라는 말로 위로하려는 마음을 표현하고 있다. 이는 삶의 고통스러운 순간들을 지나쳐 온 한강이 자신의 경험을 통해 얻은 통찰이다.
첫 행에서 시인은 "태어나 두 달이 되었을 때 아이는 저녁마다 울었다"라고 시작한다. 여기서 '아이'는 삶의 연약함을 상징한다. 특히 '두 달'이라는 짧은 시간은 아이의 생명이 얼마나 여리고 보호받아야 할 존재인지를 강조한다. 저녁마다 우는 아이는 해가 지는 시간과 맞물려 일종의 불안과 두려움, 존재의 외로움을 표현한다.
이어지는 "배고파서도 아니고 어디가 아파서도 아니고 아무 이유도 없이"라는 구절은 인간의 고통이 항상 명확한 이유를 갖고 있지 않음을 말해준다. 이는 시인이 삶에서 느꼈던 무명의 불안과 고통을 반영하며, 이 고통은 단순한 신체적 문제를 넘어서는, 존재론적인 불안임을 시사한다.
"거품 같은 아이가 꺼져버릴까 봐 나는 두 팔로 껴안고"에서 '거품'이라는 비유는 매우 중요하다. 거품은 순간적으로 존재하지만 쉽게 사라지는 존재로, 아이의 연약함과 생명의 덧없음을 상징한다. 시인은 이런 아이를 보호하려고 자신의 두 팔로 껴안는다. 이는 인간이 연약한 존재를 어떻게든 보호하려는 본능적 행위를 나타내며, 한편으로는 시인의 어머니로서의 본능적 감정이 드러난다.
다음으로 "왜 그래. 왜 그래. 왜 그래."라는 반복적 질문은 시인이 아이의 울음에 대한 이유를 찾으려는 간절함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러한 반복은 단지 아이에 대한 질문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이기도 하다. 시인은 자신의 내면에 울려 퍼지는 고통을 해결하고자 하는 마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내 눈물이 떨어져 아이의 눈물에 섞이기도 했다"라는 구절에서, 시인은 자신과 아이의 고통이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부모와 자식 간의 정서적 연대감을 표현하며, 동시에 고통은 나누어질 수 있는 것임을 암시한다.
"괜찮아. 괜찮아. 이제 괜찮아."에서 시인은 자신의 직관에 따라 아이에게 위로의 말을 던진다. 이 말은 결국 스스로에게 향한 위로이기도 하다. 울음이 즉시 그치지 않았지만, 중요한 것은 시인의 울음이 누그러졌다는 점이다. 이 부분은 고통을 완전히 없애는 것이 아니라, 그 고통을 받아들이고 조금씩 풀어가는 과정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서른 넘어야 그렇게 알았다"라는 구절은 시인의 삶에서 얻은 깨달음을 나타낸다. 이 나이를 지나면서 시인은 자신의 내면에 있는 고통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배웠다. 이는 한강이 개인적 경험을 통해 얻은 통찰로, 시는 일종의 자기 위로의 서사로 읽힌다.
마지막으로 "괜찮아. 이제 괜찮아."라는 반복적 표현은 시 전체의 주제의식을 잘 드러낸다. 시인은 고통 속에서도 스스로를 위로하며, 결국 고통이 사라지진 않더라도 그 고통을 품을 수 있는 힘을 찾았음을 나타낸다. 이러한 주제의식은 한강이 지속적으로 탐구해 온 인간 내면의 고통과 그 치유에 대한 시적 메시지와 맞닿아 있다.
이 시는 한강의 독특한 시적 감수성과 표현 방식을 통해 인간의 고통과 치유 과정을 섬세하게 담아내고 있다. 단순한 언어로 이루어진 이 시는 오히려 그 간결함 속에서 깊은 정서적 울림을 자아낸다.
ㅡ 청람 김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