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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론가 청람 김왕식 Oct 16. 2024

고향집 처마풍경  ㅡ 백영호 시인

청람 김왕식

 






                 고향집 처마풍경


                           시인 백영호




어릴 적 고향집 처마는
쉴 틈 없는 연속극장
봄에는 강남 제비 새끼치고
여름엔 처마 끝으로
떨어지는 낙숫물 소리
가을엔 시래기와 곶감 말리고
겨울용 장작 저장고로
추수 포대 쌓이는 그곳
해서, 겨울 처마 끝에는
추억의 끝판왕
고드름 수정 고드름 차지였지

여름날과 겨울날
빗물이 연출하는 수경水景공간
낙숫물 대 고드름
닮은 듯 판이한 매혹이라

이제는 흐린 기억비늘
추억의 빈 들에 남아
내 유년의 추억 들판에
등 푸른 깃발 나부끼고 있다.






문학평론가ㆍ시인 청람 김왕식






백영호 시인은 유년의 경험을 시적 언어로 담아내며, 소소한 일상 속에 숨겨진 기억과 가치를 재조명하는 시인이다. 그의 시에는 자연과 인간의 관계, 시간의 흐름 속에서 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담겨 있다. 이 시 역시 고향집의 처마 아래 펼쳐진 유년의 장면들을 기억의 조각들로 재구성하며, 사라져 가는 시간 속에서도 변치 않는 추억의 본질을 발견하려는 작가의 철학을 엿볼 수 있다. 일상의 소소함이 쌓여 하나의 서사가 되는 구조는 그의 작품 세계를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다. 처마라는 공간은 단순한 구조물이 아닌 시간과 기억을 품은 '무대'로 기능하며, 작가는 그 안에 자연과 인간, 그리고 자신의 유년 시절을 융합해 시를 완성하고 있다.

"어릴 적 고향집 처마는 / 쉴 틈 없는 연속극장"

첫 연에서 ‘처마’를 하나의 극장으로 은유한 표현이 인상적이다. 이는 처마가 계절의 변화와 사람들의 삶이 교차하는 장소였음을 암시한다. ‘연속극장’이라는 단어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끊임없이 펼쳐지는 사건들을 연상하게 하며, 일상의 반복과 그 안에 스며든 변화를 포착하려는 시인의 시선을 보여 준다.

"봄에는 강남 제비 새끼 치고"

이 구절은 봄을 상징하는 제비의 번식으로 자연의 생명력을 표현한다. 강남 제비가 유년의 기억에 자리 잡은 것은 자연과 더불어 성장한 작가의 삶을 반영한다. 이는 단순한 계절 변화 이상의 의미로, 자연의 순환과 인생의 성장을 암시한다.

"여름엔 처마 끝으로 / 떨어지는 낙숫물 소리"

여름의 처마 끝에서 떨어지는 낙숫물은 시간의 흐름을 청각적으로 형상화한 이미지다. 단순한 소리가 아닌, 유년 시절의 감각적 경험을 떠올리게 한다. 이 소리는 유년기 기억의 배경음처럼 반복되어 흐르며, 시간과 계절이 이어짐을 암시한다.

"가을엔 시래기와 곶감 말리고"

가을 풍경에서는 저장과 준비의 의미가 부각된다. 시래기와 곶감은 겨울을 대비하는 조상의 지혜를 담고 있다. 이는 단순한 풍경 묘사를 넘어, 인생의 준비와 기다림을 내포한 상징적 장면이라 할 수 있다.

"겨울용 장작 저장고로 / 추수 포대 쌓이는 그곳"

겨울을 대비하는 장작과 추수 포대는 자연과 사람의 상호작용을 드러낸다. 이는 가족과 공동체의 일원이었던 시인의 어린 시절 기억과 연결된다. 이러한 장면을 통해 고향의 삶이 단순한 노동이 아닌 따뜻한 협력과 준비의 시간이었음을 느끼게 한다.

"해서, 겨울 처마 끝에는 / 추억의 끝판왕 / 고드름 수정 고드름 차지였지"
고드름은 겨울의 절정과 추억의 결정체로 표현된다. ‘수정 고드름’은 어린 시절의 신비한 풍경으로 자리 잡으며, 단순한 자연물 이상의 의미를 부여받는다. 고드름은 차가움 속에서도 아름다움을 간직한 기억의 상징으로 작동한다.

"여름날과 겨울날 / 빗물이 연출하는 수경水景공간 / 낙슷물 대 고드름 / 닮은 듯 판이한 매혹이라"

여기서는 여름의 낙숫물과 겨울의 고드름을 대조하며, 유사하면서도 다른 매력을 지닌 두 계절을 형상화한다. 물의 두 가지 형태를 대비한 것은 변화와 지속이라는 주제를 암시하며, 같은 기억 속에서도 다양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시간의 양면성을 표현한다.

"이제는 흐린 기억비늘 / 추억의 빈 들에 남아 / 내 유년의 추억 들판에 / 등 푸른 깃발 나부끼고 있다"

마지막 연에서는 흐릿한 기억 속에서 여전히 생생히 남아 있는 추억의 상징이 등장한다. ‘등 푸른 깃발’은 유년 시절의 상징적인 기호로, 그 시절의 자유와 순수함을 상기시킨다. 이는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 본질적인 추억의 힘을 강조하며, 유년기의 경험이 현재의 정체성에 깊이 스며 있음을 암시한다.

「고향집 처마풍경」은 시인의 유년기와 고향에 대한 애정을 섬세하게 표현한 작품이다. 백영호는 처마라는 작은 공간을 통해 자연과 인간, 기억과 시간의 연결성을 시각적으로 형상화한다. 이 시의 감성은 고향의 따뜻한 풍경과 잃어버린 시간에 대한 그리움을 바탕으로 하며, 독자에게 자신의 유년기와 고향의 경험을 자연스럽게 공유하게 한다. 시에서 주제는 ‘변화 속의 지속성’과 ‘기억의 힘’으로 요약된다. 계절과 사물의 변화를 통해 시간의 흐름을 드러내면서도, 그 안에 깃든 따스한 정서를 놓치지 않고 담아낸 것이 특징이다.

백영호의 시는 단순한 향수의 표현을 넘어 삶의 본질에 대한 성찰을 담고 있다. 작은 일상 속에 숨겨진 의미를 찾아내는 그의 시선은 독자에게도 삶을 새롭게 바라보게 한다. ‘수경(水景) 공간’과 같은 독특한 표현은 자연의 변화와 그에 따른 감정을 섬세하게 전달하며, 고드름과 낙숫물을 대비하는 구조를 통해 서로 다른 시간과 경험의 매혹을 동시에 드러낸다. 시는 단순한 기억의 나열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를 잇는 정서적 연결고리로서 기능한다. 이는 백영호 시인이 추구하는 가치철학—삶의 작은 순간들이 모여 인생 전체를 구성한다는 믿음—을 잘 보여 준다.

이 시의 유기적인 흐름과 감성적 깊이는 독자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고향집 처마 아래에서 펼쳐진 유년의 기억들은 비록 사라졌으나, 그 시절의 경험과 정서는 여전히 현재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 이처럼 시인은 사소한 일상의 풍경을 통해 보편적 감정을 환기시키며, 자연과 인간, 기억과 시간의 유기적 연결을 아름답게 노래하고 있다.








백영호 시인님께




안녕하십니까,
시인님.

우연히 시인님의 「고향집 처마풍경」을 읽고 깊은 감동을 받았기에 이렇게 펜을 들게 되었습니다. 시를 읽으며 문득 저의 어린 시절 시골에서 보낸 시간들이 떠올랐고, 한동안 잊고 지냈던 추억들이 생생하게 되살아났습니다. 덕분에 과거로 여행을 떠난 듯한 기분으로, 오래전 제 마음 한구석에 잠들어 있던 기억들을 꺼내어 다시금 되새기게 되었습니다.

시인님의 시 속에서 묘사된 고향집의 처마는 단순히 건축물의 일부가 아니라, 시간의 흐름 속에서 다양한 장면을 담아내는 하나의 무대처럼 느껴졌습니다. 마치 제 고향집의 풍경이 시에 그대로 담긴 듯했습니다. 봄이면 제비가 날아와 둥지를 틀고 새끼를 치던 모습, 여름이면 처마 끝에서 듣던 낙숫물 소리, 가을이면 곶감과 시래기를 매달아 말리던 장면들이 저도 모르게 떠올랐습니다. 겨울이 오면 처마 밑에 매달린 고드름을 만져 보며 그 신기함에 넋을 잃던 시절이 얼마나 아름다웠던지요.

시인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계절은 끊임없이 흘러가고 그에 따라 자연과 사람들의 생활도 변화합니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정서는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마음속에 남아 있다는 것을 시를 통해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낙숫물과 고드름이라는 대비적인 이미지로 여름과 겨울의 풍경을 나란히 배치한 구절은 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두 계절의 모습은 서로 다르지만, 그 안에 담긴 매혹은 같은 뿌리를 지니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 또한 어린 시절 여름과 겨울의 모습을 떠올리며 그 차이 속에 숨어 있는 동일한 정취를 느꼈습니다.

이제는 저의 고향집도 예전의 모습과는 많이 달라졌고, 시골에 계시던 부모님도 도시로 이사 오셨기에 더 이상 그 옛 풍경을 그대로 볼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시인님의 시를 읽고 나니 그 풍경들이 다시금 눈앞에 생생하게 펼쳐진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아마도 시인이 그리워하는 고향집의 처마 역시 저의 기억 속 고향집과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래서일까요? 시를 읽는 내내 남의 이야기가 아닌, 마치 제 이야기처럼 느껴졌고, 유년의 순간들을 함께 공유하는 듯한 친근함이 가슴 깊이 전해졌습니다.

또한 시 속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난 시인의 철학과 삶의 태도에 많은 공감을 느꼈습니다. 사소하고 작은 순간들이 모여 인생이라는 큰 그림을 그려 나간다는 메시지가 저의 마음에 깊이 와닿았습니다. 우리는 종종 일상 속에서 지나치는 사소한 것들을 쉽게 잊곤 합니다. 하지만 시인님의 시는 그 사소함이야말로 우리의 삶을 지탱하는 중요한 요소임을 일깨워 주었습니다. 고드름과 낙숫물처럼 작은 자연의 요소들이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 내듯, 우리 인생의 순간들도 모여 소중한 기억과 의미를 만들어 갑니다.

저 역시 어린 시절에는 고향집의 처마 아래서 보내던 시간이 그토록 소중한지 몰랐습니다. 하지만 이제와 돌아보니, 그 시간들이 지금의 저를 형성하는 중요한 뿌리였음을 깨닫게 됩니다. 바쁘게 살아가는 도시 생활 속에서 그리움으로 남은 고향의 기억들이 오늘 시를 통해 한층 더 의미 있게 다가왔습니다. 시인님께서 그려 내신 시의 한 줄 한 줄이 저의 기억을 불러내고, 잊고 지냈던 정서를 일깨워 주었기에 감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시인님의 시는 단순한 향수의 표현을 넘어, 잊히지 않는 추억과 그 속에 담긴 소중한 가치를 다시금 상기시켜 주었습니다. 시를 읽으며 마음이 따뜻해지고, 잃어버린 시간 속에서 위로를 받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시인의 고향을 향한 애정과 시선이 그대로 전달되어 저의 마음에도 고향을 향한 그리움이 한층 짙어졌습니다.

마지막 연의 "흐린 기억비늘"과 "추억의 빈들"이라는 표현은 특히 저의 가슴에 깊이 남았습니다. 시간이 지나며 기억은 흐려지지만, 그 속에 깃든 정서는 여전히 우리 마음속에 남아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제는 고향에 직접 가지 못하더라도, 그 시절의 추억이 저의 마음속 들판에 깃발처럼 나부끼고 있다는 사실이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이 편지를 마치며, 시인님께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시를 통해 저의 유년기와 고향의 기억을 다시금 되찾을 수 있었고, 그 속에서 삶의 의미와 따뜻함을 되새길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도 시인님께서 그려 내실 많은 시들이 저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에게도 소중한 기억과 감동을 전해 줄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시인님의 건강과 평안을 기원하며, 이만 글을 마치겠습니다.

진심을 담아,
독자 드림.




ㅡ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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