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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론가 청람 김왕식 Oct 20. 2024

단풍의 절규

청람 김왕식











                       단풍의 절규


                                                  김왕식






 가을이 되면 우리는 흔히 단풍을 보고 "아름답다"라고 말한다. 붉게 물든 나뭇잎들은 분명 눈에 띄는 화려함을 자랑한다. 그 속에 담긴 의미를 깊이 들여다보면, 단순히 아름다움만을 상징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단풍은 사실 자연이 서서히 죽음에 다가가며 내는 마지막 몸부림이자 절규이다.
단풍이 아름답다고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람들은 가을이 되면 나무들이 물드는 붉은색과 노란색의 조화를 보고 자연의 신비로움을 찬양한다. 그러나 그 찬란한 색들은 사실 나무가 살아남기 위한 고군분투의 흔적이다. 나뭇잎은 계절이 바뀌면서 더 이상 광합성을 충분히 할 수 없고, 나무는 잎을 떨구기 위해 엽록소를 파괴한다. 그렇게 해서 드러나는 붉은색은 나뭇잎이 생명력을 잃어가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즉, 그 색은 생명의 마지막 빛남이라고 할 수 있다.

단풍은 그저 붉은 잎이 아니다. 그것은 나무가 이룬 생명의 끝자락에서 보내는 마지막 메시지다. 나무는 봄과 여름 동안 열심히 자라며 푸른 잎을 내밀고, 사람들에게 그늘을 제공하며, 생명력을 과시한다. 그러나 가을이 되면 생명력을 잃어가면서 나무는 그 찬란한 붉음을 드러낸다. 우리는 그 모습을 보고 '아름답다'라고 말하지만, 나무는 오히려 자신이 견뎌온 고통과 상처를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이 시에서 단풍은 "피멍 든 마음을 토로하는 절규"로 묘사된다. 피멍은 보통 외부에서의 충격이나 상처로 인해 생기는 것이다. 나무 역시 외부 환경에 의해 상처를 입는다. 날씨가 추워지면서 나뭇잎이 광합성을 하지 못하고 서서히 죽어가면서 그 잎사귀는 붉게 물든다. 그 붉음은 마치 피멍이 들어버린 마음처럼, 나무가 겪는 고통을 상징한다. 나무는 단풍을 통해 자신이 겪는 어려움과 고통을 절규하듯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단풍을 보면서 아름답다고 느끼는 감정은 인간이 가진 일종의 방어기제일지도 모른다. 고통과 상처를 그대로 마주하기보다, 우리는 그것을 포장하고, 아름답다고 평가하며 그 이면의 아픔을 보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 단풍을 보며 우리는 그저 가을이 주는 낭만에 빠져들지만, 그 이면에는 자연이 보내는 마지막 신호가 담겨 있다. 나무는 자신의 생명을 다해 피멍 든 잎을 떨구며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을 치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단풍은 더 이상 그저 눈에 보이는 아름다움의 상징이 아니다. 단풍은 고통과 상실, 그리고 마지막까지 살아남으려는 생명체의 몸부림을 상징한다. 나무가 단풍을 통해 보여주는 붉음은 그 자체로 절규하는 듯하다. 나뭇잎 하나하나가 떨어질 때마다 나무는 고통을 토로하며, 우리는 그 모습을 보고 "아름답다"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나무의 입장에서는 생존을 위한 필사적인 투쟁의 한 순간인 것이다.

또한 단풍은 인간의 삶과도 연결된다. 사람도 마찬가지로 고통과 상처를 겪으며 살아간다. 겉으로는 강인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속으로는 크고 작은 상처들이 쌓여간다. 그리고 그 상처들은 언젠가 표면으로 드러나기 마련이다. 단풍처럼 인간도 고통의 절정에서 어떤 형태로든 자신의 상처를 드러내기 마련이다. 그 상처들이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일 수도 있지만, 그 안에는 깊은 아픔이 숨어 있다.

결국, 단풍은 자연이 겪는 고통과 상처를 담은 하나의 상징적 표현이다. 가을의 아름다움 속에는 깊은 슬픔과 아픔이 숨어 있으며, 그 절규는 우리가 쉽게 지나치는 자연의 소리일지도 모른다. 단풍을 단순히 아름답다고만 여기지 않고, 그 속에 담긴 고통과 생명의 마지막 몸부림을 이해하는 것이 가을을 더 깊이 있게 느끼는 방법일 것이다.

자연이 보여주는 마지막 절규인 단풍은 우리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삶의 끝자락에서도 우리는 살아남기 위해 애쓰고, 그 과정에서 우리도 모르게 상처를 드러낼 때가 있다. 이 상처를 아름답게 포장할 수도 있겠지만, 결국 그것은 절규와 다르지 않다. 단풍을 바라보며 우리는 그 속에 담긴 슬픔과 고통, 그리고 생명의 끈질긴 의지를 함께 느낄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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