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평론가 청람 김왕식
Oct 25. 2024
해변의 나그네 삶은 어디쯤 ㅡ 박철언 시인
김왕식
■
해변의 나그네 삶은 어디쯤
시인 청민 박철언
아득한 수평선 너머로 떨어지는 해 찬란한 슬픔 품고 아름답게 누운 석양 가냘픈 바닷새 무리 지어 해변을 노닌다
캘리포니아 말리부(Malibu) 해변
삶의 무게를 벗고 맨발로 걷는 시간 피곤한 길손의 가슴은
텅 비어 버린다
구름이 멀리멀리 떠나가고
파도가 쉼 없이 밀려온다
불어오는 바람은
오염된 세속을 씻어준다
새로운 태양이 솟아오를 내일
구름도 바람도 다시 오리라
외로운 나그네
어디쯤 가고 있을까
■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ㅡ
청민 박철언 시인은 다양한 사회적 경험을 바탕으로 시적 세계를 펼친다. 그의 삶은 정치, 사회 활동가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는 한편, 문학적 감수성을 지닌 시인의 정체성을 함께 품고 있다. 특히 그의 시는 인생의 고단함과 자연에 대한 깊은 통찰을 보여주며, 인간 존재의 유한성을 조망하는 동시에 새로움을 추구하는 면모를 지닌다.
이러한 삶의 이력이 그의 작품에 고스란히 투영되어, 자연의 이미지를 통해 인간의 본질적 갈등과 해답을 모색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 시 ‘해변의 나그네 삶은 어디쯤’ 또한 그의 이러한 삶의 궤적 속에서 이해될 수 있다.
첫 번째 행, “아득한 수평선 너머로 떨어지는 해”는 인간의 유한한 삶을 상징하는 수평선과 석양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수평선은 끝없이 이어지는 듯 보이지만 결국 한계가 있으며, 이는 인간 삶의 종착점, 즉 죽음이나 종말을 연상시킨다. 여기서 ‘떨어지는 해’는 그 종말을 암시하나, 동시에 자연스러운 순환의 일부로서 슬픔 속에서도 아름다움을 간직한다.
이어지는 “찬란한 슬픔 품고 아름답게 누운 석양”은 슬픔이라는 감정이 단지 어둡거나 부정적인 것이 아니라, 그 속에 담긴 아름다움과 가치가 있음을 나타낸다.
이는 삶의 비극적 순간조차도 결국에는 하나의 예술적 경험으로 승화될 수 있음을 의미하며, 시인은 석양을 통해 이러한 감정적 상징을 극대화한다.
“가냘픈 바닷새 무리 지어 해변을 노닌다”는 자연 속 작은 존재들이 함께 모여 살아가는 모습을 통해 인간의 외로움과 고립감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바닷새의 가냘픔은 연약한 인간의 모습을 대변하며, 그들이 해변을 배회하는 모습은 삶의 불확실성과 방황을 상징적으로 묘사한다.
특히 “캘리포니아 말리부 해변”이라는 구체적 지명은 현실성과 상징성을 동시에 가진다. 말리부는 고요하고 아름다운 곳이지만, 동시에 현대 사회의 이방인으로서 느끼는 고독감이 더해져 시적 자아의 내면적 갈등을 더욱 부각한다. 해변에서 맨발로 걷는다는 것은 삶의 무게를 내려놓고 순수한 본질로 돌아가는 행위로 해석될 수 있다.
“피곤한 길손의 가슴은 텅 비어 버린다”는 인간이 이 세상을 떠돌며 겪는 고단함과 그로 인해 얻는 내적 허무감을 상징한다.
‘텅 비어 버린다’는 표현은 이 모든 방황 끝에 도달하는 일종의 영혼의 공허함을 의미하며, 삶의 여정이 필연적으로 마주하는 감정적 고비를 표현한다.
“구름이 멀리멀리 떠나가고 파도가 쉼 없이 밀려온다”는 자연의 끊임없는 순환을 통해 세속적 삶의 순간들이 결국은 지나간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이는 인간의 고통도 언젠가는 사라지고 새로운 시작이 올 것임을 암시하며, 나그네의 삶 속에서도 희망을 품게 한다.
“불어오는 바람은 오염된 세속을 씻어준다”는 물질적 삶의 부패와 오염된 마음을 바람이라는 자연적 힘이 씻어내는 장면을 통해, 시인은 순수와 정화를 꿈꾼다. 이는 인간이 결국 자연으로 돌아가면서 정화되고, 본질적인 깨달음에 이를 수 있음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마지막 부분에서 “새로운 태양이 솟아오를 내일”은 죽음 후에 찾아올 새로운 삶을 암시하며,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찾는 시인의 낙관적 태도를 보여준다. ‘외로운 나그네’는 결국 인생의 여정을 의미하며, 그의 길은 끝이 없고 어디로 향할지 모르는 불확실한 운명을 상징한다.
이 시는 석양의 슬픔과 새벽의 희망이라는 대비적 이미지를 통해 인생의 순환과 그 속에서 발견되는 정서적 통찰을 그려낸다. 시인의 가치철학은 삶의 무게를 자연의 순환 속에서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희망과 정화를 찾아가는 과정에 있다.
ㅡ 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