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평론가 청람 김왕식
Oct 27.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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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토리, 인간과 다람쥐에게 있어
청람 김왕식
인간은 가을 숲을 거닐며 도토리를 줍는다. 손에 닿는 작은 열매는 무심한 듯 땅에 떨어져 있지만, 사실 그것은 땅과 나무, 계절의 긴 여정을 담고 있다. 그 도토리를 품은 다람쥐는 인간의 손길을 탐색하며 의구심을 느낀다.
이 작은 열매가 온전히 자신의 것이 아닐까 염려하며, 혹시나 인간이 다 가져가 버리지 않을까 하는 불안을 품고 지켜본다.
인간 역시 그 눈빛을 감지하며, 미안함을 느낀다. 작은 도토리 하나에도 이렇게 생명들이 얽혀 있음을 깨닫는 순간, 인간과 다람쥐는 그 경계 속에서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게 된다.
생태계에서 자연이 제공한 모든 자원은 단순한 생존의 도구가 아니다. 그것은 생명들이 함께 나누며 유지해 가는 상호 의존의 균형이다. 다람쥐에게 도토리는 겨울을 나기 위한 귀중한 식량이지만, 인간에게는 잠시 그 계절의 풍요를 즐기는 사소한 기쁨이다.
이 소소한 기쁨이 지나치게 반복될 때, 인간은 자신의 필요보다 과도한 탐욕을 부리고 만다. 도토리를 주워 모으는 인간의 행동은 작은 선택이지만, 그 뒤에는 자연과의 관계를 인식하지 못한 채 끝없는 소비를 추구하는 현대인의 모습이 반영되어 있다.
생태학적 관점에서 도토리는 단지 하나의 열매가 아니다. 그것은 자연이 인간과 동물에게 나누어 준 일종의 생태적 몫이며, 각자가 필요한 만큼을 취하는 자연의 질서다.
현대사회에서 인간은 이 몫의 경계를 쉽게 잊는다. 대량 생산과 소비의 흐름 속에서, 인간은 더 이상 생태적 한계를 고려하지 않는다. 다람쥐의 겨울 식량을 빼앗는 인간의 손길은, 결과적으로는 인간 자신에게 돌아올 자연의 징벌을 의미할 수도 있다. 모든 생명은 생태계의 순환 안에서 그 자신의 위치를 가지고 있으며, 다른 존재와의 조화를 통해서만 그 생명이 지속될 수 있다.
도토리를 통해 드러나는 인간과 다람쥐의 관계는 더 큰 자연의 질서를 상징한다. 자연이 허락한 몫 안에서 함께 살아가는 것이 바로 생태계의 본질이다. 인간은 더 많은 것을 얻기 위해 자연을 착취하기보다는, 주어진 몫 안에서 절제하고 나누어야 한다. 다람쥐는 인간의 눈치를 보며 자연의 몫을 지키려 한다. 인간은 그 눈길에서 생태적 책임을 깨닫고, 스스로의 욕심을 제어해야 한다.
청람 김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