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평론가 청람 김왕식
Oct 30.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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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의 귀향
시인 정해란
한 아름 장미가 벽에 거꾸로 매달렸다
누군가에게 전했던 감정의 빛깔들
꽃에 담긴 기쁨, 축하, 감사, 설렘마저
그 빛이 바래고 있다
화려했던 온도가 시들어가고 있다
첫말이 울음으로 번역되는 순간
태어나는 기쁨도 우렁찬 울음이었다
울음을 의역한 건 꽃들뿐이었다
입학이라는, 취업이라는, 고백이라는, 결혼이라는
인생길 첫걸음부터 마지막 운구까지
사람의 감정을 대신했던 꽃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때마다
주인공보다 화려하면서도
주인공을 더 화려하게 빛냈던 꽃
온갖 기억은 꽃잎 깊숙이 숨긴 채
서서히 말라가는 드라이플라워
향도 색도 한 아름 무게도 버리고
어디로 귀향하는 중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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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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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란 시인의 삶과 시 ‘꽃의 귀향’은 상실과 회귀의 길을 통해 감정의 변화를 조명한다. 그의 시에서 꽃은 삶의 중요한 순간을 장식하는 매개체로 등장하여 감정을 대변하고, 사라져 가는 빛깔과 향을 통해 존재의 무상함과 귀향의 의미를 부각한다.
첫 행에서 벽에 매달린 장미는 과거의 화려함이 서서히 사그라드는 모습을 상징한다. 장미의 위치는 ‘거꾸로’ 매달린 상태로 묘사되어, 감정이 역행하는 듯한 모습을 암시한다. 누군가에게 전달되었던 축하와 감사, 설렘 등의 감정들은 이제 빛바랜 채로 남아, 시간이 지나며 화려했던 온도가 시들어가는 과정을 표현한다.
울음에서 시작하는 기쁨의 태동과 감정의 일체감은 태어날 때부터 울음을 지녔던 인간의 본성에 대한 성찰이다. ‘울음을 의역한 건 꽃들뿐이었다’는 구절은 인간의 감정을 대신 표현했던 꽃들의 역할을 상기시키며, 각종 인생의 장면을 지나오면서도 그 상징적 역할이 담긴 꽃의 기능을 재조명한다. 시인은 여기에서 꽃이 단순한 장식물이 아닌 감정의 메타포임을 강조하며, 삶의 장면마다 꽃이 자리 잡고 있음을 은유적으로 드러낸다.
스포트라이트 속에서 주인공보다 화려하지만, 동시에 주인공을 더 빛내던 꽃의 모습은 상징적이다. 이는 주변에 빛을 주는 존재로서 꽃의 이중적인 면모를 암시하며, 드라이플라워가 되어가면서 점차 본래의 색과 향을 잃는 모습은 인생의 퇴색된 순간과도 닮아 있다. ‘향도 색도 한 아름 무게도 버리고 어디로 귀향하는 중일까’라는 마무리에서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떠나는 꽃의 귀향, 즉 영원히 이어지지 않는 삶의 허무와 회귀를 감각적으로 포착한다.
정해란의 ‘꽃의 귀향’은 단순한 생명체의 소멸이 아닌, 모든 존재가 귀향하는 과정 속에 남겨지는 흔적을 은유적으로 담아낸다. 감정의 깊이와 이미지의 유기적인 흐름이 돋보이며, 시인은 꽃을 통해 존재의 덧없음과 감정의 회귀를 경쾌하면서도 묵직하게 담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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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란 시인님께
안녕하세요, 시인님의 작품을 애정 어린 마음으로 감상하는 독자입니다. 이렇게 편지를 통해 소중한 마음을 전할 기회가 주어져 큰 기쁨과 감사함을 느낍니다.
시인님의 시를 읽을 때마다 묵묵히 전해오는 울림이 가슴 깊이 새겨집니다. 특히, ‘꽃의 귀향’을 통해 전해주신 사라져 가는 것들의 아름다움과 무게를 느끼며, 시간이 흐르며 변해가는 우리의 감정들을 꽃에 비유한 점이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화려했던 꽃잎이 시들어가며 귀향의 길로 접어드는 모습이 저의 삶 속에서도 공명하여, 이 시가 내포하고 있는 상실과 회귀의 메시지가 오랜 시간 저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감정의 진폭을 세밀하게 담아내며, 일상 속에서 놓치기 쉬운 아름다움을 섬세하게 포착해 주시는 시인님의 작품을 통해, 저는 삶을 더 깊이 바라보는 법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시인님이 시에서 말씀하시는 사라짐의 아름다움과 이를 통해 우리에게 남겨지는 여운은 제게 더없이 소중한 가르침으로 다가왔습니다.
앞으로도 시인님이 걸어가시는 문학의 길 위에서, 더 많은 이들이 시인님의 작품을 통해 위로와 성찰을 얻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시인님의 글이 늘 빛나고 그 가르침이 널리 전파되기를 기원하며, 언제나 응원하겠습니다.
건강과 행복이 가득하시기를 바라며, 진심 어린 마음으로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ㅡ 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