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평론가 청람 김왕식
Nov 07.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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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란의 승화
시인 청강 허태기
첫 시집 출판 기념
선물 받은 양란 화분
조랑조랑 매달린
황금빛 붉은 꽃송이
위태롭고 은은하다
응접실 베란다를
예삐 장식한 양란
눈길 줄 때마다
즐거움 주더니
시름시름 앓다가
마른 꽃대 위에
하얀 종이꽃이 되었다
시들어도 썩지 않는
천상의 꽂이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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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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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태기 시인의 시 '양란의 승화'는 그가 인생의 한 노정을 지나며 마주한 자연의 아름다움을 심미적으로 녹여낸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첫 시집 출판을 기념해 받은 양란 화분은 시인에게 기쁨과 감동을 선사한 동시에, 자신의 삶에 대한 깊은 성찰을 이끌어내는 매개체가 되었다. 시인은 이 양란을 통해 아름다움의 순간과 영원의 의미, 소멸과 승화의 과정을 시로 그려내며 인간 삶의 진리를 은유적으로 표현하였다. 그가 보여주는 시어와 이미지들은 꽃의 생명력과 그 고유의 상징성을 통하여, 인간 삶의 덧없음 속에서도 결코 사라지지 않는 가치와 진실을 담아낸다.
첫 연에서 시인은 "조랑조랑 매달린 황금빛 붉은 꽃송이"로 양란의 고귀한 아름다움을 섬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조랑조랑’이라는 표현은 꽃의 형태뿐만 아니라 그 안에 깃든 생명력까지 담아내고 있으며, ‘황금빛’과 ‘붉은 꽃송이’는 생동감과 생명력을 상징한다. 양란은 시인의 삶에 들어와 예사롭지 않은 기쁨을 주었으며, 그의 인생 여정의 새로운 동반자와도 같은 존재로 자리 잡았다.
둘째 연에서 "응접실 베란다를 예삐 장식한 양란"은 시인에게 단순한 장식품 이상의 존재임을 드러낸다. ‘예삐’라는 표현은 다정하고 애정 어린 시인의 감정을 그대로 보여주며, 양란을 바라보는 시인의 따스한 시선과 애정을 느끼게 한다. 그에게 양란은 생활의 단조로움 속에서 기쁨과 위안을 주는 존재로, 그의 삶의 일부분으로 자리 잡는다.
셋째 연에서는 양란의 시들어가는 과정을 묘사하며 삶과 죽음, 그리고 그 이후의 세계를 암시한다. "시름시름 앓다가 마른 꽃대 위에 하얀 종이꽃이 되었다"는 표현에서 양란의 죽음은 단순히 사라짐이 아니라 ‘하얀 종이꽃’으로 상징화되어 마치 천상의 경지로 승화되는 듯한 느낌을 준다. 시드는 과정을 통해서도 결코 썩지 않고 존재하는 꽃, 천상의 꽃으로 승화되는 모습은 죽음의 필연성을 받아들이는 동시에, 그것을 초월하는 존재의 의미를 전한다. 이는 삶의 덧없음 속에서도 결코 사라지지 않는 가치와 진리를 추구하는 시인의 가치 철학을 엿볼 수 있다.
이 시는 시각적 이미지뿐만 아니라 감성적 깊이를 통해 독자에게 강한 인상을 남긴다. 시인이 표현한 양란의 모습은 눈앞에 펼쳐지듯 생생하며, 그 안에 깃든 아름다움은 곧 인생의 덧없음을 아름답게 수용하는 자세를 상징한다. 또한 시드는 양란을 통해 승화와 영원의 의미를 통찰하며, 인간의 내면 깊은 곳에 있는 영원한 생명에 대한 갈망을 일깨운다.
시의 전체적인 흐름은 생생한 꽃에서 천상의 꽃으로 승화해 가는 양란의 여정을 통하여, 시인이 바라보는 삶과 죽음, 존재의 의미를 유기적으로 엮어낸다. 또한 단순한 장식품이었던 양란이 시인의 삶에 의미 있는 존재로 자리 잡고, 이를 통하여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인간 존재의 의미를 찾고자 하는 그의 심정을 여실히 느낄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양란의 승화'는 시인의 가치 철학이 담긴 작품이자, 삶과 죽음을 관조하는 깊은 울림을 주는 시라 할 수 있다.
허태기 시인의 시에서 사용된 표현들은 고유한 이미지와 함께 함축된 감정을 전달하여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독창성을 드러낸다. 양란의 고귀한 아름다움과 그것이 시드는 과정은 마치 삶의 순환과도 같은 모습을 띠며, 인간 존재의 본질을 탐구하려는 시인의 시선이 돋보인다.
ㅡ청람 김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