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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론가 청람 김왕식 Nov 19. 2024

부패와 발효, 삶의 이치

김왕식









             부패와 발효, 삶의 이치






부패는 썩어 없어짐이다. 그 자체로는 파괴와 종말을 뜻한다. 그러나 이 부패라는 현상은 역설적으로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는 출발점이 되기도 한다. 썩는다는 것은 단순히 소멸이 아니라, 본질의 변화를 통해 더 나은 상태로의 전환을 가능하게 한다. 이를 우리는 발효라고 부른다.

발효는 흥미롭다. 부패와 발효의 차이는 어디에 있을까? 둘 다 물질의 분해 과정이다. 그러나 발효는 부패와 달리 통제된 환경과 정성을 통해 이루어진다. 부패는 혼돈 속에서 자리를 잡지만, 발효는 질서 속에서 이루어진다. 된장, 고추장, 김장김치처럼 우리의 밥상을 풍요롭게 하는 발효 식품들은 이 원리를 잘 보여준다. 이들은 본래 부패의 가능성을 지닌 재료들이지만, 인간의 손길로 발효의 경지에 이르러 새로운 맛과 가치를 얻는다.

이 지점에서 부패와 발효는 단순히 과학적 현상이 아니라, 삶의 비유로 다가온다. 우리 삶 속에서의 어려움과 고난, 또는 실패와 좌절은 겉으로는 부패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를 다르게 바라보고, 적절한 환경과 시간이 더해지면 발효로 전환될 수 있다. 실패 속에서 배우고, 상처 속에서 성장할 때, 그 고난은 삶을 풍요롭게 하는 발효 과정이 된다.

세상 모든 일에는 양면이 있다. 부패와 발효의 관계처럼, 좋은 것과 나쁜 것은 구분이 모호할 때가 많다. 나쁜 일이 반드시 나쁘기만 한 것이 아니며, 좋은 일이 항상 좋기만 한 것도 아니다. 한쪽 면만을 보고 판단하기엔 세상은 너무도 복잡하고 섬세하다.

이 원리는 자연의 이치에서도 발견된다. 낮과 밤, 계절의 순환, 생과 사. 각각은 서로 반대되는 개념처럼 보이지만, 실은 하나의 순환 속에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우리가 흔히 긍정적으로 여기는 '생명'은 '죽음'이라는 필연적인 끝을 통해 완성된다. 죽음으로 인해 새로운 생명이 자라나고, 낡은 것은 새로워진다. 이처럼 세상은 양면성을 통해 균형을 맞춘다.

부패와 발효를 떠올리며, 우리는 인생을 돌아볼 수 있다. 힘들고 고통스러운 순간은 마치 부패처럼 우리를 무너뜨릴 수 있다. 그러나 그 안에는 새로운 시작의 씨앗이 숨어 있다. 그것을 발효로 승화시키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마음의 온도와 환경을 조절하고, 적절한 시간을 기다릴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하다.

된장이나 김치가 발효를 통해 깊은 맛을 내듯, 우리의 삶도 발효를 거칠 때 더 풍부해진다. 발효는 시간이 걸린다. 조급하게 서두르면 오히려 망친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성장도 시간이 필요하다. 때로는 인내하고 기다리는 법을 배워야 한다.

삶의 어려움과 시련이 찾아올 때, 그것을 부패로 치부하며 포기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안에 숨은 발효의 가능성을 본다면, 우리는 전혀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마주할 수 있다. 삶의 쓴맛은 발효를 거쳐 단맛으로 바뀔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그 과정을 받아들이고, 이를 통해 배우려는 태도다.

된장과 김치는 단순한 음식이 아니다. 그것들은 우리의 삶을 담은 철학이다. 세상 모든 것은 부패와 발효 사이에 있다. 이를 잘 이해하는 사람은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을 발견한다. 부패와 발효, 그 경계선 위에서 우리는 삶의 깊은 맛을 완성해 나간다.



ㅡ 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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