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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 둔덕의 그 집

김왕식







남쪽 둔덕의 그 집




김왕식





남쪽 둔덕의 햇볕이 고스란히 스며드는 곳에 자리한 작은 집. 그림 같은 서너 칸의 소박한 집이 놓인 그곳은 세상의 소음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 나무로 만든 창문은 넓고 투명하며, 햇빛이 부드럽게 방 안을 감싸는 그곳은 마치 시간이 느릿하게 흐르는 동화 속 한 장면 같다.

창 너머로 들려오는 새소리가 잠을 깨운다. 여전히 이른 아침, 옆에 누워 있는 사랑하는 이의 고요한 숨소리에 마음이 평온해진다. 조용히 일어나 부엌으로 향한다. 커피를 끓이는 손길은 가벼우나 정성스럽다. 커피의 은은한 향이 퍼지는 동안, 방 안에는 아직 이른 아침의 온기가 남아 있다. 함께 나누는 커피 한 잔. 잔잔히 흘러나오는 음악과 함께 서로의 하루를 열어가는 순간은 단순하지만 무엇보다도 소중하다.

창밖으로 보이는 오래된 사과 과수원은 한 해 한 해 제멋대로 자라고 있다. 정성스레 돌보지 못해 사과는 몇 개 열리지도 않는다. 그러나 봄이면 과수원 한켠에 핀 꽃들이 온 세상을 물들인다. 꽃잎들이 바람에 흩날리는 모습은 자연의 시를 쓰는 것만 같다. 그 아름다움 속에서 삶의 분주함이 잠시 멈춘다.

그 과수원의 끝자락, 햇살이 가장 먼저 닿는 자리에는 조그마한 집이 서 있다. 벽에는 책장이 가득하고, 창문으로는 나무의 흔들림이 고스란히 보인다. 그곳에서 하루는 단순하지만 풍요롭게 흘러간다. 새소리를 듣고, 책을 읽으며, 음악을 듣는 일상. 도시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잔잔한 기쁨이 이 작은 집을 감싸고 있다.

삶은 때로는 너무도 빠르고 복잡하게 흐르지만, 이곳에서는 그 모든 것들이 잊힌다. 하루하루의 시간은 느리게 쌓여가고, 그 안에서 사람들은 동화 같은 삶을 살아간다. 사랑하는 이와 함께 창가에 앉아 과수원을 바라보며 나누는 대화 속에는 특별한 말이 없어도 따뜻함이 배어난다. 무언가를 이루어야 한다는 조급함도, 어딘가로 달려가야 한다는 불안도 없다.

남쪽 둔덕의 이 작은 집은 세상의 복잡함과 분주함을 피해 도달한 삶의 마지막 쉼표와도 같다. 간결하지만 진솔한 삶의 순간들 속에서, 가장 소박한 것이 가장 풍요로움을 증명해 보이는 이 공간. 그 안에서 매일을 함께 채워가는 두 사람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 서정이다.

이곳은 어쩌면 누구나 한 번쯤 꿈꿔왔을 이상향일 것이다. 그러나 그곳에서의 삶은 꿈이 아닌 현실 속에서 이뤄진다. 더도 덜도 아닌, 삶 그대로의 무게를 간직하며, 사랑과 자연과 일상의 조화를 느끼는 이 삶이야말로 진정한 동화의 한 페이지일 것이다.

삶의 본질에 가까운 그곳에서, 두 사람은 새소리를 듣고 커피를 나누며 동화 같은 하루를 완성한다. 그들의 발길 아래 남겨진 시간들은 영원히 이 둔덕을 향기로 물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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