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평론가 청람 김왕식 Nov 24.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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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면 알게 되고
수필가 文希 한연희
우리 집 정원은 지구를 구하는데 기여한다.
와 본 사람은 안다. 속된 말로 지나친 자뻑이라 속으로 웃을지 모른다. 흙이 안 보일 정도로 뭘 그렇게 심고 싶은 게 많아 여백 없이 꽂아 놓고 표현만큼은 거창하게 하는구나 생각할 수 있다.
내가 봐도 보기 좋은 정원은 아니다. 무질서와 보잘것없는 겉모양이라 언뜻 보면 관리도 제대로 못 하면서 욕심은 많다고 우리 남편처럼 판단하기 쉽다.
내가 정원에 식물을 들일 때 마구잡이로 사다 심지 않는다. 나름대로 비중 있는 우선순위가 있다.
미선나무는 한반도 고유종이다. 1종 1 속의 특산식물로 한때 멸종위기종으로 지정되었다가 멸종위기종에서 해제된 경우가 1순위다.
미선나무는 잎보다 먼저 흰색이나 분홍색, 상아색 꽃이 모여 핀다. 9월쯤 부채 모양의 열매를 맺는데 열매 모양이 부채를 닮아 부채 선(扇) 자를 써 미선(尾扇)이라 부르며 그윽한 향기가 난다. 우리 집 정원엔 흰색과 분홍색이 자란다. 꽃 모양은 개나리처럼 보이고 가지도 개나리처럼 끝이 밑으로 휘어져 거치대로 받쳐줘야 한다.
미선나무꽃이 피었다고 호들갑을 떨면 남편은 관심이 없으니, 시큰둥이다. 그러다 수목원에 가서 무리 지어 핀 걸 보면,
"저 꽃 이쁘네. 저건 이름이 뭐야?"
"저 꽃 우리 집에도 있잖아요. 미선나무꽃."
" 그래? 난 못 봤는데." 관심이 있고 없고의 차이다.
깽깽이풀 역시 한때 멸종위기종으로 지정됐었다가 다행히 다량 번식 등 인위적인 증식이 가능해지면서 멸종위기종에서 해제되었다. 깽깽이풀은 주로 산 중턱 아래 낮은 숲, 민가와 가까운 곳에 자생하다 보니 뿌리를 캐 약재로 팔거나 관상 가치가 높아 꽃을 혼자 보겠다고 뽑아가는 등 자생지를 훼손하는 경우가 많아 멸종위기종이 된 경우다.
4~5월 잎이 나기 전, 높이 20~30㎝의 꽃줄기 끝에 지름 2cm 정도의 원을 그리며 성냥골 같은 몽오리가 야리야리한 연보랏빛 꽃잎으로 하늘을 향해 활짝 피면 얼마나 예쁜지 쪼그리고 앉아 다리에 쥐가 날 때까지 본다.
날이 조금만 흐리거나 기온이 차면 한낮까지 기다려도 꽃잎을 열지 않는다. 꽃잎은 한없이 가냘파서 바람이 조금만 강하게 불어도 꽃잎은 우수수 땅으로 내려와 봄눈처럼 사라진다.
깽깽이풀 잎사귀는 한련화 잎을 닮았다. 봄비 내린 뒤 잎에 물방울을 담고 있으면 영락없는 한련화 잎이다. 꽃이 질 때쯤 잎이 나오고 검붉은 색으로 자라다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진초록으로 변한다. 깽깽이풀은 뿌리가 황색이라 황련이라 부르기도 한다.
깽깽이풀은 철저히 자신을 보호하는 식물이다. 식물은 대체로 속살을 드러내며 위로 자라지만 깽깽이풀은 속을 감싸며 방패처럼 생긴 잎사귀가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다. 보호막인 잎새의 은밀한 공간에서 새끼손톱만 한 씨방이 열매 익기를 기다렸다가 때가 되면 씨앗 주머니를 터트려 참깨 알 만한 씨앗을 날린다.
깽깽이풀꽃은 토종 야생화 중 아름답기로 으뜸이다.
어떤 식물이 사라진다는 건 단순히 예쁜 꽃 한 송이가 사라지는 게 아니다. 생태계의 균형이 깨질 뿐 아니라 우리 삶에도 돌이킬 수 없는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 조선후기 문장가 유한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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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가ㆍ수필가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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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연희 작가의 '사랑하면 알게 되고'는 단순한 정원 이야기를 넘어 생태계와 인간의 관계를 성찰하게 만드는 수필이다. 작가는 자신의 정원을 지구를 구하는 공간으로 비유하며, 생태계의 소중함과 그 안에 자리한 식물들의 가치에 대해 조명한다. 글은 자신의 정원이 겉으로는 보잘것없고 무질서해 보일지라도, 각 식물 하나하나에 담긴 의미와 우선순위를 통해 심오한 메시지를 전한다.
미선나무와 깽깽이풀은 각각 멸종위기에서 벗어난 사례로 등장하며, 생태적 가치를 중심으로 인간의 무관심과 무지를 비판한다. 미선나무는 희소성과 꽃의 아름다움을 통해 우리의 관심을 촉구하고, 깽깽이풀은 스스로를 보호하며 자연의 섬세함과 경이로움을 보여준다. 이러한 식물들의 특징은 단순히 자연미를 넘어 인간이 생태계를 보전할 의무가 있음을 은유적으로 제시한다. 작가는 이를 통해 자연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는 과정을 독자에게 체험하게 한다.
글의 핵심은 유한준의 말을 인용한 마지막 문장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보이나니"라는 문장은 자연을 사랑함으로써 그 본질과 가치를 깨닫게 되는 과정을 요약한다. 이는 단지 정원을 가꾸는 취미를 넘어 생태계와의 교감과 이해로 확장된다. 작가는 식물과 자연에 대한 애정이 무관심 속에서 놓칠 수 있는 아름다움과 가치를 드러내는 열쇠임을 강조한다.
한연희 작가의 글은 단순한 정보 전달을 넘어, 자연의 소중함과 생태적 책임을 성찰하게 만든다. 글의 담담한 어조 속에서 독자들은 자신이 놓치고 있었던 자연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며, 사랑을 통해 보이는 새로운 시각을 받아들이게 된다. 이는 한 작가의 정원이 단순한 정원이 아니라, 자연과 인간을 이어주는 작은 생태계의 축소판임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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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하는 한연희 작가님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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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선생님의 수필 「사랑하면 알게 되고」를 읽고 깊은 감동과 깨달음을 얻어 이렇게 글을 올립니다. 정성과 애정으로 가꾸신 정원의 이야기를 통해 자연과 인간의 관계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단순히 아름다운 식물 몇 송이를 넘어 생태계와 생명에 대한 철학적 메시지를 담아내신 선생님의 글은 제 마음에 잔잔한 울림을 주었습니다.
미선나무와 깽깽이풀에 얽힌 이야기를 읽으며, 평소 무심히 지나쳤던 자연의 섬세함과 생명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특히, 깽깽이풀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잎사귀로 속을 감싸며 열매를 품고 씨앗을 퍼뜨리는 모습은 마치 우리 인간이 삶을 지켜내기 위해 애쓰는 모습과도 닮아 있었습니다. 그 과정을 관찰하시며 느끼신 감동과 그 안에서 발견하신 의미를 담담히 풀어내신 문장들이 제게는 하나의 교훈이자 위로로 다가왔습니다.
또한, 생태계의 균형이 깨지는 것이 단지 하나의 식물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은 큰 울림을 주었습니다. 자연을 사랑하고 보호하는 일이 곧 우리의 삶을 지키는 일이라는 점을 다시금 깨닫게 해 주셨습니다. 작가님의 글을 통해 자연을 대하는 저의 태도를 되돌아보고, 그 소중함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선생님께서 인용하신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보이나니"라는 유한준 선생님의 말씀은 글의 주제를 완벽히 응축한 한 마디였습니다. 사랑으로 시작된 관심이 자연을 새롭게 보게 하고, 그 보임을 통해 더 나은 이해와 보살핌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저 역시 선생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며,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삶을 실천하고 싶습니다.
정원의 작은 식물 하나에도 생명의 가치를 발견하시고 이를 글로 풀어내신 선생님의 섬세한 시선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자연과 인간의 조화로운 삶을 이야기로 전해 주시기를 기대하며, 작가님의 건강과 평안을 기원합니다.
ㅡ 청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