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평론가 청람 김왕식 Nov 29. 2024
■
시골 마을 천재
수필가ㆍ시인 文希 한연희
손녀와 나란히 감기에 걸렸다.
교회 다녀와 심심했는지 회관에 가서 언니들이랑 화투 치자고 조른다.
한국예술인복지재단에 중간보고해야 하는데 복잡해서 딸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고모랑 급히 해결할 일이 있다니까 손녀가 혼자 마을회관에 가겠다고 나선다. 거기서 그림을 그리겠다며 가방을 챙겼지만 보지 못했다.
애를 혼자 보내놓고 조바심이 났다.
한참 후에 회관에 있는 첫째 언니한테 문자가 왔다. 점심 약을 먹지 않았다며 감기약을 가져오라고 했단다. 약을 챙겨 내려갔더니 화투판이 평소와 다르다. 말을 안 하고 수신호처럼 몸동작으로 의사소통을 한다. 가만 보니 입에 넓적한 투명 테이프를 붙이고 있었다.
내용인즉 다섯 살 손녀가 언니들 감기 옮는다고 마스크 대신 테이프 가져와 입에 붙여줬단다.
붙이겠다는 애나 붙여준다고 입에 붙이도록 허락하고 몸짓으로 화투 치는 언니들이나 수준이 비슷하다. 왁자한 웃음소리는 계속되었다.
언니들 틈에 껴서 고사리 같은 손에 화투장을 펼치고 고를 외친다.
그리곤 승리의 환호를 지르는 다섯 살 꼬마, 언니들은 그저 동생 자랑에 여념이 없다.
약을 손수 챙겨 먹는 애가 어디 있으며 다섯 살짜리가 고스톱 친다면 누가 믿겠냐는 둥 당신들이 보장하는데 손녀는 천재란다.
■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ㅡ
이 글은 한적한 시골 마을을 배경으로, 다섯 살 손녀와 함께하는 시인의 소소한 일상을 담고 있다. 작가는 따뜻한 시선으로 손녀와 이웃 여성들의 관계를 유머러스하면서도 깊은 애정으로 풀어낸다. 특히 손녀의 엉뚱하면서도 기발한 행동은 독자에게 웃음을 자아내면서도 어린아이 특유의 천진함과 순수함을 느끼게 한다.
초반부에서 감기로 인해 나른한 일상을 보내던 손녀와의 대화와 행동은 시골의 평범한 하루를 그린다. 손녀는 마을회관에 가겠다고 나서며 독립심과 호기심을 보이는데, 이는 단순한 놀이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 중간 보고서 작성이라는 현실적인 고민 속에서도 딸과 고모의 도움을 받으며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화자는 현대적인 삶과 시골 공동체의 전통적인 모습이 교차하는 순간을 보여준다.
특히, 마스크 대신 투명 테이프를 입에 붙이는 손녀의 기발함과 그것을 유쾌하게 받아들이는 언니들의 반응은 마을 공동체의 따뜻함과 소박함을 극적으로 드러낸다. 손녀가 화투판의 주인공이 되는 모습은 다섯 살이라는 나이를 초월해, 아이와 어른이 어우러져 하나가 되는 장면을 보여준다. 이는 단순한 놀이가 아니라, 시골 마을 특유의 공동체적 유대감과 사람들 간의 믿음과 신뢰를 상징한다.
글의 후반부에서 손녀를 "천재"로 평가하는 언니들의 유머 섞인 발언은 시골의 여유로운 일상을 생생히 그려내며 독자들에게 미소를 짓게 한다. 또한, 손녀가 약을 챙겨 먹으며 독립적으로 행동하는 모습은 작지만 성숙한 면모를 드러내며 아이에 대한 자부심을 느끼게 한다.
결국, 이 글은 단순한 시골 마을의 일상을 넘어, 세대 간의 조화와 따뜻한 인간미를 보여주는 소중한 이야기다. 작가 특유의 담백한 문체와 섬세한 관찰력은 독자로 하여금 마치 그 현장에 있는 듯한 생생함을 느끼게 하며, 일상의 소소한 행복이 얼마나 중요한지 상기시킨다.
■
한연희 작가님께
ㅡ
안녕하세요, 작가님의 글을 읽고 깊은 감동을 받은 독자입니다. 이번에 접한 시골 마을 천재는 평범한 일상 속에서도 따뜻한 정과 웃음을 발견할 수 있는 글이었습니다. 손녀와 마을회관의 언니들 사이에서 벌어진 이야기는 유쾌하면서도 정겹고, 소소한 일상이 지닌 특별한 아름다움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해 주었습니다.
특히 다섯 살 손녀의 엉뚱하면서도 사랑스러운 행동이 인상 깊었습니다. 마스크 대신 투명 테이프를 가져다 언니들의 입에 붙이는 장면은 아이 특유의 순수함과 재치가 돋보였고, 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어른들의 모습에서는 시골 공동체의 따뜻한 인간미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화투판에서 몸짓으로 소통하며 웃음을 나누는 모습은 단순한 놀이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어 독자로서도 흐뭇한 미소를 짓게 만들었습니다.
손녀가 마을회관에서 중심이 되어 언니들과 어우러지는 장면은 세대 간의 자연스러운 조화와 따뜻한 유대감을 잘 보여주었습니다. 손녀를 "천재"라며 칭찬하는 언니들의 농담 섞인 말속에서도 서로를 향한 애정이 가득 담겨 있음을 느꼈습니다. 또한, 손녀를 걱정하며 조바심을 내는 작가님의 마음을 통해 손녀를 향한 깊은 사랑과 책임감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작가님의 글은 일상의 소중한 순간을 섬세하게 담아내어 독자에게도 잔잔한 울림을 전합니다. 바쁜 현대 사회에서 흔히 잊히는 소소한 행복의 가치를 깨닫게 해주는 글이었고, 시골 마을의 평범하지만 특별한 이야기를 통해 따뜻함과 위로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감동적이고 아름다운 글을 전해주신 작가님께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작가님의 글을 통해 삶의 소소한 아름다움과 인간미를 느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언제나 건강하시고, 좋은 글로 많은 이들에게 따스함을 전해주시길 응원하겠습니다.
ㅡ 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