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첫눈 ㅡ 시인 정형표

김왕식






첫눈




시인 정형표





눈꽃 송이송이
부비부비 사랑을 속삭이며
떼 지어 내려오면

낯부끄러워하는 해님
산 뒤에 숨어
눈꽃 사랑 첫날밤
몰래 훔쳐보다 홀짝이던 술에 잠들고

어둠 속 차가운 칼바람
눈꽃 사랑 방해해도
바람 불면 부는 대로
파도 놀이하듯
사랑하는 눈꽃송이
사랑의 마법에 빠져들고
나도 사랑에 빠진다

길 위에
지붕 위에
나무 위에
내 마음 위에
쌓인 눈꽃처럼

너와 나의 추억
깨끗하게 쌓였으면
아름답게 쌓였으면
가슴속 무지개 타고
찐한 사랑의 미소
하얀 눈 위에 살포시 얹습니다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정형표 시인은 자연 속에서 인간의 감성과 추억을 융합하며 사랑의 진정성과 순수함을 강조하는 작품 세계를 구축하였다.
그의 시는 단순한 언어 속에서도 내면 깊숙한 감동을 불러일으키며, 삶과 사랑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을 담고 있다. 이 시에서 그는 첫눈을 매개로 사랑의 마법과 추억의 순백성을 이야기하며 독자에게 감각적 이미지와 철학적 울림을 동시에 전달한다.

"눈꽃 송이송이"
눈꽃의 소복한 모습을 반복적인 어휘로 묘사하며 시각적 이미지를 극대화한다. 이는 순수하고 깨끗한 사랑의 시작을 암시한다.

"부비부비 사랑을 속삭이며 떼 지어 내려오면"
'부비부비'라는 의성어를 통해 눈송이의 부드러운 움직임과 사랑의 속삭임을 연상하게 한다. 단순히 눈이 내리는 장면을 넘어 사랑의 친밀감과 따스함을 암시한다.

"낯부끄러워하는 해님 산 뒤에 숨어"
해님을 의인화하여 첫눈이 내리는 순간을 부끄러워하는 인간적인 감정으로 그려낸다. 이는 자연과 감정이 교감하는 순간을 효과적으로 표현한다.

"눈꽃 사랑 첫날밤 몰래 훔쳐보다 홀짝이던 술에 잠들고"
‘첫날밤’이라는 단어를 통해 눈꽃의 사랑 이야기에 낭만적 서사를 부여한다. 그러나 ‘술에 잠들고’는 인간적 나태함을 반영하며, 아름다운 순간에도 현실적인 요소를 넣어 균형감을 준다.

"어둠 속 차가운 칼바람 눈꽃 사랑 방해해도
차가운 현실과 사랑의 시련을"
‘칼바람’으로 표현하며, 사랑이 외부적 방해에도 흔들리지 않음을 강조한다.

"바람 불면 부는 대로 파도 놀이하듯 사랑하는 눈꽃송이"
자연의 흐름에 순응하며 사랑을 즐기는 모습을 담았다. 이는 시인이 강조하는 사랑의 순리적이고 자유로운 본질을 드러낸다.

"사랑의 마법에 빠져들고 나도 사랑에 빠진다"
화자의 내적 변화를 표현하며 독자에게 사랑의 보편적 감정을 동참시키는 데 성공한다.

"길 위에 지붕 위에 나무 위에 내 마음 위에 쌓인 눈꽃처럼"
단순한 구조로 눈꽃이 쌓이는 모습을 구체적으로 묘사하며, 추억과 사랑의 흔적이 자연 속에 녹아드는 모습을 시각화한다.

"너와 나의 추억 깨끗하게 쌓였으면 아름답게 쌓였으면"
이중적 반복구조를 통해 사랑과 추억의 완벽함을 염원한다. 이는 눈꽃의 순백성과 인간의 감정이 조화를 이루는 장면을 형상화한다.

"가슴속 무지개 타고 찐한 사랑의 미소 하얀 눈 위에 살포시 얹습니다"
마지막 연에서 '무지개'는 희망과 사랑의 다채로움을, '찐한 미소'는 감정의 깊이를 상징한다. 이는 시 전체의 정서를 응축하며, 독자에게 사랑의 긍정적 에너지를 전달한다.

요컨대, 정형표의 이 시는 첫눈을 소재로 사랑과 추억의 순수성을 찬미하며 독자의 감각과 감정을 섬세히 자극한다.
첫눈의 깨끗함을 사랑의 순수성과 연결시키는 데 성공하며, 자연 현상을 단순히 묘사하는 것을 넘어 인간의 내적 감정을 자연스럽게 융합하였다. 시인은 ‘눈꽃 송이’와 같은 반복적 이미지를 통해 독자에게 시각적, 청각적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부비부비’, ‘홀짝이던 술’ 등 의성어와 의태어를 사용하여 시적 리듬감을 살렸다. 이는 시를 읽는 이로 하여금 마치 한 폭의 겨울 풍경 속에 들어선 듯한 몰입감을 준다.

특히, ‘어둠 속 차가운 칼바람 눈꽃 사랑 방해해도’와 같은 구절은 사랑이 외부적 시련에도 흔들리지 않는 강인함을 담아내며, 시인의 사랑에 대한 철학적 깊이를 엿보게 한다. 마지막 연에서 ‘가슴속 무지개’와 ‘찐한 사랑의 미소’는 사랑과 추억의 완성된 이상을 상징하며, 단순히 사랑을 이야기하는 데 그치지 않고 희망과 미래의 가능성까지 암시한다.

다만, 일부 반복적인 표현과 설명이 과잉될 수 있는 부분이 있어, 이를 줄이고 핵심적인 이미지와 메시지에 집중했다면 더욱 강렬한 여운을 남겼을 것이다.
예컨대, ‘길 위에, 지붕 위에, 나무 위에, 내 마음 위에’와 같은 나열적 표현은 전체적인 리듬감에는 기여하지만, 한 번 더 응축된 언어로 표현되었더라면 작품의 서정적 완성도를 높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 시는 첫눈이 가진 자연의 순수함과 이를 통해 되살아나는 사랑의 감정을 훌륭히 결합하며 독자의 가슴에 따뜻한 울림을 남긴다. 정형표의 시적 세계는 단순한 자연 묘사를 넘어 삶과 사랑의 본질을 성찰하게 하며, 시인이 추구하는 사랑의 철학과 이상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독자는 이 시를 통해 추억의 아름다움과 사랑의 순수함이 지닌 힘을 다시금 깨닫게 될 것이다.


ㅡ 청람







keyword
작가의 이전글시골 마을 천재 ㅡ 수필가 한연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