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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의 손길 ㅡ 노영선 작가

김왕식














겨울의 손길




시인 노영선






하얀 눈송이 흩날리는 수돗가에
시골 아낙들은 수건을 머리에 두르고
앞치마 위로 빨간 고무장갑을 낀 채,
찬바람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다.

절인 배추 위에 정성스레 양념을 펴며
한 손엔 매운 향기,
다른 손엔 묵직한 사랑을 담는다.
그 손길마다 겨울의 온기가 스며들고,
그 마음마다 가족의 밥상이 그려진다.

한 움큼씩 담아내는 것은
단지 김치가 아니다.
삶의 애환, 소소한 이야기,
그리고 식구들의 내일을 걱정하는 마음이다.

눈 속에 묻히는 발자국처럼
흔적은 사라지지만,
그 손끝의 수고는 김장독 안에서
따뜻한 밥상으로 되살아난다.

찬바람이 불어오는 날에도
아낙들의 땀방울은 보이지 않는 꽃처럼 피어나,
가족의 웃음을 지키는 겨울의 전설이
된다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노영선 시인은 삶의 일상 속에서 소소한 가치를 발견하고, 그것을 따스한 시선으로 풀어내는 데 탁월하다. 그의 시는 단순히 사물을 묘사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이면에 깃든 인간의 정서와 삶의 철학을 담아내는 점에서 독창적이다.
시 '겨울의 손길'은 시골 여성들의 겨울철 김장 풍경을 통해 가족을 위한 헌신과 사랑, 그리고 공동체적 가치를 미적으로 형상화한 작품이다.
이 시는 단순한 노동을 넘어 삶의 본질적 가치를 성찰하게 하며, 노영선 시인의 따뜻한 미학과 삶의 철학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하얀 눈송이 흩날리는 수돗가에 /
시골 아낙들은 수건을 머리에 두르고 / 앞치마 위로 빨간 고무장갑을 낀 채, / 찬바람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다."

시골 여성들의 겨울철 일상 풍경을 생생히 묘사하였다. 하얀 눈송이는 차가운 겨울의 배경을 제시하며, 시각적 이미지를 강화한다. 빨간 고무장갑과 앞치마는 노동의 상징이지만, ‘웃음을 잃지 않는다’는 구절은 그 노동이 단순히 고된 것이 아니라 기쁨과 헌신으로 이루어진 것임을 드러낸다. 노동과 행복을 결합한 점이 시적 감동을 배가시킨다.

"절인 배추 위에 정성스레 양념을 펴며 /
한 손엔 매운 향기, /
다른 손엔 묵직한 사랑을 담는다."

‘절인 배추’와 ‘양념’은 구체적 사물을 넘어 시적 상징으로 확장된다. 매운 향기는 김치의 본질적 맛을 암시하는 동시에, 삶의 강렬한 순간들을 상징한다. ‘묵직한 사랑’은 가족을 향한 희생적 마음을 담고 있으며, 노동을 통해 드러나는 사랑의 본질을 감각적으로 전달한다.

"그 손길마다 겨울의 온기가 스며들고, /
그 마음마다 가족의 밥상이 그려진다."

손길과 마음은 단순한 행동과 정서를 넘어 가족의 생명을 이어가는 중요한 요소로 변모된다. 겨울의 온기라는 표현은 단순히 계절적 추위를 넘어, 가족 간의 따뜻함과 연결된다. 이 구절은 시 전체의 정서를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한 움큼씩 담아내는 것은 /
단지 김치가 아니다. /
삶의 애환, 소소한 이야기, /
그리고 식구들의 내일을 걱정하는 마음이다."

김장은 단순한 음식을 만드는 일이 아니라, 삶의 애환과 사랑을 담는 행위임을 강조한다. ‘삶의 애환’과 ‘소소한 이야기’는 김장이라는 구체적 행위 속에서 인생의 보편적 정서를 녹여낸다. 특히, 내일을 걱정하는 마음은 시인의 철학적 깊이를 드러낸다.

"눈 속에 묻히는 발자국처럼 /
흔적은 사라지지만, /
그 손끝의 수고는 김장독 안에서 / 따뜻한 밥상으로 되살아난다."

흔적이 사라진다는 구절은 인간의 노동이 순간적일 수 있음을 상기시키지만, 그 가치와 열매는 지속됨을 보여준다. 김장독과 밥상의 이미지로 가족의 지속성을 상징하며, 시적 긴장감을 완화시키는 동시에 정서를 풍부하게 한다.


"찬바람이 불어오는 날에도 /
아낙들의 땀방울은 보이지 않는 꽃처럼 피어나, /
가족의 웃음을 지키는 겨울의 전설이 된다."

‘보이지 않는 꽃’은 시적 비유로, 노동의 성과가 눈에 보이지 않아도 삶을 아름답게 만드는 요소임을 시사한다. 마지막 구절에서 김장은 단순한 행위를 넘어 전설적 서사로 승화된다. 이는 시 전체의 서정적 완결성을 높인다.

요컨대, 노영선 작가의 '겨울의 손길'은 평범한 겨울철 풍경을 통해 노동의 가치와 가족의 사랑을 심도 있게 그려낸 작품이다.
시의 감성적 측면은 생동감 넘치는 이미지와 따뜻한 정서로 독자의 공감을 이끌어내며, 시인의 가치철학은 일상적 노동 속에서 인간 삶의 본질을 성찰하게 한다.
다만, 몇몇 표현이 지나치게 익숙한 관용적 이미지에 의존하고 있어, 더 참신한 비유를 활용했다면 시적 깊이가 배가되었을 것이다.
허나 전체적으로 이 시는 노동, 사랑, 가족이라는 주제를 유기적으로 엮어내며, 독창적 미학을 구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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