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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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가 물고 다니는 문학상
시인ㆍ평론가 이오장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대한민국의 문학 위상이 한껏 높아진 현실은 누구나 부정하지 못한다. 시인만 2만 명, 문인협회 가입 회원 16,000명, 예상되는 전체 문인들 숫자는 어림잡아 5만 명에 이르는 대한민국, 어찌 자랑할 일이 아닌가. 한데, 숫자와 활동에 비해 문인들에게 부끄러움을 주는 이유는 무엇인가.
질과 양이 문제가 아니다. 자신의 행위와 위선이 문제다. 상은 잘한 것에 대한 격려로 더 잘하라고 주는 것이다. 단체에서 아래로, 위에서 아래 또는 동료들의 격려와 위로로 주는 게 상이다. 받는 사람도 이에 부응하여 노력하게 되며 그것으로 인해 더 발전해 나간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여 전 문인들의 지탄의 대상으로 변질되어 노벨문학상 수상보다 더 큰 충격을 주고 있다.
국내 최고의 상 목월, 동리 문학상은 끼리끼리 상으로 전락하다가 급기야 존체가 불확실해졌고 그 밖의 상들도 그들만의 잔치로 끝난다. 문인들에게 이보다 큰 수치는 없다. 이제는 도를 더하여 예술원 회원으로 회장까지 지낸 인사가 문학잡지사의 수상자가 되어 작은 상금과 상패에 박수를 받고, 문단의 대통령이 수상자가 되는 현실에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할까. 그분들은 수상자가 아닌 축하 자가 되어야 하는데 시상을 한 잡지사는 무슨 이득을 보려는 계획인지 알 수가 없다. 시상식에 참석하여 손뼉을 치는 인사들은 철들지 않은 문인들인가. 불참한 문인들이 몇백 배 많아 전국에서 욕하는 소리가 도로를 울리는데, 귀에 들리지도 않는단 말인가. 한강의 노벨상 수상보다 더 충격으로 다가온 이런 유치한 행태를 왜 가만히 보고만 있는가. 문인 모두 각성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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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장 작가님께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이오장 작가님의 글을 읽으며 한국 문학계가 처한 현실에 대해 깊이 성찰하게 되었습니다. 문학이 사회의 거울이자 인간 정신의 척도라면, 오늘 우리가 직면한 문제는 단순한 개인의 잘못을 넘어 문학 본연의 순수성과 책임감을 되돌아보게 하는 신호라 생각합니다.
작가님께서 지적하신 문학상과 관련된 행태에는 분명 뼈아픈 부분이 있습니다. 문학상이 본래 지닌 의미―창작자에게 격려와 위로를 주고 새로운 동력을 북돋는 자리―는 여전히 소중합니다. 실제로 많은 신인들이 상을 통해 용기를 얻고 문학적 여정을 시작합니다. 그 순수한 의미가 형식과 겉치레에 묻히고, 이해관계의 얽힘으로 인해 왜곡된다면, 문학이 지녀야 할 무게와 깊이는 퇴색될 수밖에 없습니다.
다만 작가님의 글이 지닌 비판의 강도가 일부에게는 다소 과격하게 들릴 수 있습니다. 저는 그 목소리를 냉소나 독설이 아니라, 문학을 아끼는 마음에서 비롯된 간절한 외침으로 받아들이고 싶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상처로 멈추는 것이 아니라, 이 비판을 계기로 문단 전체가 성숙과 자정을 향해 나아가는 일일 것입니다.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한국 문학의 위상이 크게 높아진 지금, 우리는 더 이상 외면하거나 미루지 말고 내부의 문제를 성숙하게 직시해야 합니다. 외부의 성취가 화려할수록 내부의 순수성과 신뢰를 지켜내는 일이 더욱 필요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성취와 현실의 괴리는 더 커질 것이고, 문학이 사회와 맺는 신뢰 또한 약화될 수 있습니다.
저는 작가님의 지적을 단순한 부정으로 보지 않습니다. 외려 그것은 한국 문학이 앞으로 나아갈 길을 성찰하게 하는 귀한 계기라 생각합니다. 문학은 명예를 좇는 자리가 아니라, 인간의 삶과 본질을 탐구하고, 독자와 순수한 교감을 나누는 자리입니다. 우리가 지금 필요한 것은 서로의 허물을 드러내는 데 머무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문학 공동체를 세우려는 성숙한 합의와 실천일 것입니다.
작가님의 글이 앞으로 더 많은 이들에게 울림이 되어, 한국 문단이 자기 성찰을 통해 새로이 성장하는 밑거름이 되기를 바랍니다. 또한 저 역시 한 사람의 독자로서, 이 현실 앞에서 반성과 성찰을 멈추지 않겠습니다.
깊은 통찰을 전해주신 데 감사드리며, 문학이 본연의 순수성과 품격을 회복해 더 건강한 미래로 나아가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ㅡ청람 김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