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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을 가르며

김왕식








새벽을 가르며







새벽이 깨질 듯 차가운 공기에 몸을 웅크리며 둔덕을 오른다. 세검정 끝자락, 아슬히 붙어 있는 달동네. 빛바랜 간판 아래 작은 교회 문이 열려 있다. 겨울새처럼 몰려드는 숨결들이 성전 안에 가득하다. 어둠 속에서 은은히 빛나는 십자가, 따뜻한 숨결로 이루어진 기도의 벽이 세워진다.

기도의 자리, 그곳은 추위와 어둠을 견디며 사는 자들이 모여드는 피난처다. 혹한 속에서 움츠린 어깨들, 말없이 고개를 떨군 이마 위에 새벽의 기도가 내려앉는다. 삶의 무게를 이겨낼 힘을 찾는 기도, 그 울림은 교회 창문 너머로 새어 나간다. 언덕 아래로 흩어지는 그 울림은 아침을 열고자 하는 간절함이다.

어느덧 머릿속에 그림처럼 그려지는 풍경. 계엄령의 음산한 그림자가 도시를 덮친다. 길거리에는 어딘가 허망한 발걸음들이 떠다닌다. 혼란스러운 정국 속에 스러지는 소외된 이들. 마치 갈 곳 잃은 잎사귀처럼 떠도는 그들을 위한 간절한 중보의 기도. 한 사람의 작은 기도가, 작은 교회의 떨리는 목소리가 온 세상에 전해지기를 바란다.

“주여, 이 겨울이 끝나고 새로운 아침이 오게 하소서.” 기도의 소리는 추운 공기를 녹이고, 따뜻한 희망으로 새겨진다. 기도문처럼 단단하게 다가오는 새벽의 소리, 그것은 살아 있는 자들의 고백이자, 아픈 이들의 탄식이다.

세상이 더 이상 고요하지 않지만, 기도 속에서는 모든 혼란이 잔잔해진다. 둔덕 위 작은 교회의 기도는 어두운 새벽의 시작을 알리는 등불과도 같다. 그렇게 모두가 눈을 감고, 입술을 떼어, 침묵과 희망의 연주를 이어간다.

새벽이 다시 오면 세상은 조금이라도 나아질까. 이 작고도 커다란 기도의 울림은 과연 어디로 닿을까. 이곳에서 시작된 작은 불씨는 언젠가 찬란한 빛으로 바뀌리라 믿는다.

기도는, 그 자체로 새벽이다. 혹독한 밤을 지나, 어둠을 밀어내며 다가오는 아침이다. 그렇게 또 하루가 시작된다.


2024 12 9

ㅡ 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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