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평론가 청람 김왕식
Dec 12.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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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만남, 좁은 거리
서울에서 지하철은 늘 익숙한 너비였다. 익숙함 속에선 사람들이 서로의 존재를 느끼기보다 그저 스쳐 지나가는 그림자였다. 나도 그랬다. 한 칸의 정적 속에서 각자의 목적지로 흘러가는 군중의 일부일 뿐이었다. 헌데 대전에 와서 만난 지하철은 전혀 달랐다.
이곳 지하철은 폭이 좁았다. 마주 앉은 사람과의 거리는 도무지 익숙하지 않은 가까움이었다. 서로 발이라도 뻗으면 금세 닿을 정도로 가까웠다. 처음엔 당황했다. 아니, 왜 이렇게 만들었을까? 사람들 간의 거리를 좁히려는 어떤 깊은 의도라도 있었던 걸까?
곧 알게 되었다. 이 가까움은 단순히 공간의 문제를 넘어선 무엇이었다. 발끝이 닿을까 긴장하면서도, 우리는 서로의 숨소리를 들었다. 그 순간 깨달았다. 이 좁은 거리는 우리를 대면하게 만드는 무언가였다. 마주치는 눈길, 가끔 터지는 쑥스러운 웃음. 서울의 지하철에선 결코 경험하지 못했던 인간적인 순간이었다.
그렇다고 이 친근함이 편한 것만은 아니었다. 마주 앉아 있으면 서로의 표정을 읽을 수밖에 없었다. 피곤한 얼굴, 무심한 눈빛, 가끔은 피식 웃음을 참지 못하는 순간까지.
"이게 배려인가?
아니면
고통인가?"
아마도 설계자는 이런 의도까지는 없었을 것이다. 친근감을 도모하기 위해 일부러 좁게 만든 것이라기보다는, 단순히 도시의 규모와 효율성을 맞추기 위한 선택이었겠지. 하지만 나는 이 좁은 공간에서 묘한 여유를 발견했다. 사람을 '보게' 되고, '듣게' 되는 경험. 이는 의도된 설계가 아니었기에 더 특별한 것이 아닐까?
문득 생각한다.
서울의 넓은 지하철이 주던 편안함 속에서는 잃었던 것이 있다. 서로를 의식하는 감각, 쑥스러움을 넘어서 피어나는 인간적인 웃음. 대전 지하철은 좁지만, 그 안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참 넓었다.
이 좁은 칸 속에서 나는 처음으로 느낀다. 발이 닿을 듯한 거리에서, 어쩌면 인간은 가장 가까워지는지도 모른다고.
ㅡ 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