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평론가 청람 김왕식
Dec 12.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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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학산 아래 찬림네 집, 사랑이 숨 쉬는 둥지
시인ㆍ수필가 김왕식
심학산 자락에 자리 잡은 작은 집 한 채. 언뜻 보면 소박하기 그지없는 이곳은 찬림네 가족이 살아가는 둥지다. 찬림, 경림, 주영 세 아이의 해맑은 웃음소리와 아이 엄마, 아빠의 깊은 사랑이 집안 구석구석 배어 있다.
이 집의 이야기를 한 꺼풀 벗겨 들여다보면, 진정한 사랑이란 무엇인지를 가르쳐주는 한 가족의 따스하고도 눈물겨운 이야기가 숨 쉬고 있다.
엄마는 늘 부엌에서 가족의 하루를 준비한다. 손끝에 담긴 정성이 빚어낸 따끈한 국물 한 그릇, 잘 익은 밥 한 공기가 가족을 끌어안는다. 그녀는 하루도 빠짐없이 아이들을 깨우며 늘 같은 말을 반복한다.
“밥 먹고 가야 하루를 잘 살지.”
아무도 모른다.
그녀가 새벽마다 시장에 가서 싱싱한 채소와 생선을 사느라 손이 얼도록 장바구니를 들었다는 것을. 아무도 모른다. 설거지통에 손을 넣으며 흥얼거리는 엄마의 노랫가락이 사실은 눈물을 삼키는 노래였다는 것을. 어깨가 아파 와도, 허리가 굽어 와도 그녀는 언제나 가족을 위해 정성을 멈추지 않는다.
그녀의 마음속 깊은 곳엔 언제나 아쉬움이 남아 있었다.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붓는 일상이 혹여 아이들에게 ‘당연함’으로 여겨질까 두려운 마음이었다.
어느 날, 찬림이 건넨 한 마디가 그녀를 울렸다.
“엄마, 엄마 밥 먹으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해.”
그 말에 엄마는 아무렇지 않은 척 등을 돌렸지만, 눈물이 뺨을 타고 흘렀다. 자신이 지킨 이 하루하루가 아이들 마음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는 것을 그제야 알게 되었다.
아빠는 늘 무뚝뚝했다. 회사에서 긴 하루를 마치고 집에 오면 피곤한 얼굴로 “다녀왔습니다” 한마디가 전부였다. 그의 손에는 언제나 무언가가 들려 있었다. 붕어빵, 호떡, 떡볶이. 작은 봉지 속 간식거리였지만, 그 속에는 그의 마음이 담겨 있었다.
그날도 아빠는 붕어빵 한 봉지를 식탁 위에 내려놓았다. 삼 남매는 환호성을 지르며 붕어빵을 나눠 들었다. 그런데, 아무도 모르게 아빠는 잠시 방문을 닫고 침대에 누웠다. 눈을 감은 그의 얼굴에는 피곤함보다 더 깊은 그리움이 서려 있었다. 어린 시절, 자신을 위해 밤늦게까지 일하던 아버지의 모습이 겹쳐졌기 때문이다.
“아버지도 이런 마음이었겠지.”
그는 혼잣말처럼 중얼이고 다시 식탁으로 나섰다. 아이들과 나눈 붕어빵 한 입, 그 따뜻함이 오늘 하루를 버티게 한 힘이었다.
엄마와 아빠의 사랑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엄마가 감기에 걸렸던 어느 날, 아빠는 그녀를 위해 약국을 들렀다. 약봉지를 한가득 사 들고 갔지만, 집 앞까지 가고도 차마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는 조심스레 약봉지를 나뭇가지에 걸고는 멀찍이 돌아섰다.
다음 날, 엄마는 그 약봉지를 들고 한참을 울었다고 한다. “이 사람이라면 내 손을 놓지 않겠구나.” 그녀는 그날 마음을 굳혔다. 그리고 두 사람은 함께 인생의 길을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삼 남매는 신기한 듯 물었다. “아빠, 그때 정말 부끄러워서 못 줬어?” 그러면 아빠는 쑥스럽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때는 말이야, 네 엄마가 너무 빛나 보여서... 내 마음을 전하기에도 부족했지.”
그 말을 들으며 엄마는 조용히 아빠의 손을 잡는다. 그 손에는 여전히 그날의 따뜻함이 남아 있었다.
찬림네 가족은 화려하지 않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도 이들은 서로를 끌어안으며 살아간다. 저녁이면 온 가족이 식탁에 둘러앉아 웃음꽃을 피우고, 주말이면 산책 삼아 심학산을 함께 오른다.
어느 날, 막내 주영이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우리 집은 왜 이렇게 작아?”
엄마는 그 질문에 잠시 멈칫했지만, 이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작아서 좋은 거야. 작으니까 우리가 더 가까이 붙어서 살 수 있지.”
그 말에 주영은 고개를 끄덕였고, 찬림과 경림도 엄마를 바라보며 작게 웃었다. 이들의 평범한 집은 그 어떤 대저택보다 따스한 사랑으로 가득 차 있었다.
심학산 아래의 이 작은 집. 그곳에서 흘러나오는 이야기는 소소하지만, 그 안에 담긴 사랑과 정성은 세상 그 무엇보다 크고 따뜻하다.
ㅡ 청람 김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