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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론가 청람 김왕식 Dec 13. 2024

새벽의 발소리

김왕식








               새벽의 발소리




신새벽,
깊은 어둠이 채 물러나지 않은 시간에 아버지는 언제나 먼저 깨어났다. 온 세상이 조용한 이 시간, 아버지의 하루는 시작되었다. 잠든 가족들이 깰까 두려워 뒤꿈치를 들고 걸음을 옮기는 모습은 마치 무거운 짐을 안은 채, 세상에 발자국 하나 남기지 않으려는 사람 같았다. 그 무거운 짐이란, 가족의 삶과 사랑을 온전히 떠맡은 그의 책임이었다.

아버지가 집을 나서면, 마당의 싸늘한 공기 속에서 발소리가 겨우 들릴 정도로 조심스러웠다. 그의 모습은 어둠 속에 스며들 듯 사라졌고, 한참 뒤에야 가족들은 다시 고요한 평화를 느꼈다. 그 고요는 아버지의 희생 위에 세워진 것이었다.

한편, 아내는 병든 시부모를 보살피며 하루를 시작했다. 그녀는 피곤에 지친 손으로 아침 준비를 하고, 무거운 마음을 앞치마에 숨겼다. 때로는 고단함에 눈물이 터져 나왔지만, 아이들이 볼세라 손등으로 훔치곤 했다. 그런 그녀의 뒷모습은 아버지가 짊어진 짐과 같은 무게를 지니고 있었다.

아이들은 철없었다. 따뜻한 밥상 앞에서 반찬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투정을 부렸다. 그런 모습에 아버지와 어머니는 미소 지으며, 그저 조용히 아이들의 접시에 반찬을 더 얹어주었다. 철없음이란 아이들에게 허락된 축복이라는 걸 그들은 알고 있었다.

긴 노동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아버지는 지친 몸을 이끌고 선술집에 들렀다. 탁주 한 잔으로 하루의 고단함을 삼키고, 군고구마 몇 개를 검은 봉지에 담았다. 녹초가 된 몸으로 집에 들어오면, 아이들은 이미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그는 살며시 봉지를 아이들 머리맡에 두고는 한참 동안 가만히 서 있었다.

그 순간, 아버지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고단함과 사랑이 그 눈물 속에 담겼다. 그는 자신이 가족에게 부족한 존재는 아닐까, 더 잘해주지 못해 미안하지는 않을까 하는 마음에 가슴으로 울었다. 동시에 아이들의 고요한 숨소리가, 아내의 든든한 모습이, 그의 삶을 지탱하는 힘이란 걸 알고 있었다.

이렇게 한국의 아버지는 살아간다. 가족의 행복을 위해 자신을 온전히 바치며, 신새벽의 발소리처럼 조용히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다. 그 사랑은 흔적조차 남지 않을지라도, 가족의 마음속에는 깊이 새겨진다.




ㅡ 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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