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평론가 청람 김왕식 Dec 15. 2024
오늘 아침
귀동냥한 이야기이다.
이에
몇 글자 보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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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직이 빚어낸 선물
1990년대 어느 날, 자선사업가 케네스 벨링은 샌프란시스코 베이의 어두운 빈민가를 지나던 중 자신의 지갑을 잃어버렸음을 깨달았다. 비서는 절망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이곳에서 지갑을 되찾는 건 불가능합니다. 그들이 돌려줄 리 없어요.” 하지만 벨링은 포기하지 않았다. 마치 희미한 빛을 믿는 사람처럼, 지갑을 주운 누군가가 연락해 오리라는 희망을 안고 전화기 앞에 앉아 기다리기로 했다. 시간이 흘러도 전화벨은 울리지 않았다. 비서는 지친 표정으로 말했다. “지갑에 명함이 있다 해도, 정말 돌려줄 마음이 있었다면 벌써 연락이 왔을 겁니다.”
벨링은 침묵 속에서 묵묵히 기다렸다. 그의 얼굴엔 조바심 대신 신뢰의 흔적이 맴돌았다. 날이 저물 무렵, 마침내 전화벨이 울렸다. 벨링은 수화기를 들었다. 떨리는 목소리의 주인공은 낡은 옷을 입은 한 소년이었다. “제가 당신의 지갑을 주웠어요.” 지갑은 손상되지 않은 채, 돈 한 푼도 빠지지 않은 모습으로 돌아왔다.
소년은 주저하며 입을 열었다. “혹시 돈을 조금 주실 수 있나요?” 비서는 비웃듯 말했다. “결국 이럴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벨링은 미소로 소년을 맞이했다. “얼마가 필요하니?” 소년은 작은 목소리로 답했다. “1달러만 주시면 돼요. 전화를 걸기 위해 가게에서 돈을 빌렸거든요. 그걸 갚아야 해서요.” 벨링은 잠시 말을 잃었다.
“내 지갑에 돈이 있었는데, 왜 그걸 쓰지 않았니?” 그는 물었다. 소년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건 제 돈이 아니잖아요. 남의 지갑을 허락 없이 열면 안 되잖아요.” 맑고 고운 눈빛이 담긴 소년의 말에 비서는 부끄러움에 고개를 숙였다. 벨링은 깊은 감동에 소년을 끌어안으며 그 맑은 마음에 찬사를 보냈다.
그날 이후, 벨링은 자신이 해오던 자선사업의 방향을 새롭게 정했다. 빈민가에서 학업을 이어가기 어려운 아이들을 위해 학교를 세우기로 한 것이다. 그는 믿었다. 정직과 순수함이 있는 곳에는 변화와 희망이 꽃을 피운다는 것을. 개학식 날, 벨링은 연설에서 말했다.
“누구도 쉽게 판단하지 마십시오. 사람들 속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선량함이 숨 쉬고 있습니다. 그 마음을 믿고, 그들에게 다가가십시오. 순수함을 존중하는 일이야말로 가장 가치 있는 투자입니다.”
소년의 정직한 손길이 잃어버린 지갑을 돌려준 것이 아니라, 벨링의 믿음과 방향을 되찾아 주었다. 그 손길은 작은 씨앗처럼 희망을 품었고, 그 씨앗은 교육과 신뢰의 땅에서 싹을 틔웠다.
세르반테스는 말했다. “하늘은 정직한 사람을 도울 수밖에 없다. 정직한 사람은 신이 만든 것 중 최상의 작품이기 때문이다.” 이 소년의 정직은 하늘의 손길이 되어, 모두의 가슴에 잔잔한 물결을 일으켰다.
희미한 빈민가의 골목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정직이라는 씨앗이 어떤 열매를 맺는지를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그것은 단순히 잃어버린 물건을 되찾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 마음속에 잠자고 있던 신뢰와 희망을 깨우는 일이었다.
오늘도 누군가는 정직을 선택하고, 누군가는 그 정직으로 인해 삶의 방향을 새롭게 바꾼다. 그리고 우리는 깨닫는다. 정직이란 단순한 도덕적 선택이 아니라, 세상을 밝히는 빛의 한 조각임을.
ㅡ 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