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평론가 청람 김왕식 Dec 16.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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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설瑞雪, 그 두 얼굴
눈이 내렸다.
하늘에서 사뿐히 내려앉은 눈송이들은 세상을 하얗게 물들인다. 흔히들 말하듯 '서설(瑞雪)'이라 한다. 복된 눈, 길운을 가져다주는 눈이라는 뜻이다. 어린아이들은 기뻐하며 눈밭에서 뛰놀고, 강아지마저 신난 얼굴로 이리저리 뛰어다닌다. 하얀 세상 속에서 들려오는 웃음소리들은 겨울날의 한 폭의 동화 같다. 그러나 이런 눈을 온전히 즐기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시선에서 본 눈은 결코 서설이 아니다.
농부들에게 겨울은 언제나 치열한 계절이다. 얼어붙은 땅에서도 채소를 길러내는 비닐하우스는 농부들의 마지막 희망이다. 하지만 그 비닐하우스 지붕 위로 소리 없이 내려앉은 눈은 점점 무거워진다. 축복이라 불리던 눈이 쌓이고 또 쌓여, 결국 비닐하우스의 지붕이 주저앉고 만다. 하얗게 뒤덮인 하우스를 바라보며 농부는 망연자실한다. "서설"이라는 단어는 이제 그에게 아무런 위로도 되지 않는다. 눈이 농부의 뺨 위로 떨어지는 눈물과 겹쳐진다.
눈은 단순히 자연의 한 장면일 뿐이다. 그러나 그것이 누군가에게는 동화 같은 추억이 되고, 또 다른 이에게는 삶의 무게로 다가온다. 담장이 무너지고, 지붕이 내려앉은 농가의 풍경은 서설의 또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하얀 눈은 세상을 덮으며 아름다움을 선사하지만, 그 아래에서 무너지는 것은 한 가정의 꿈이고, 생계이며, 삶의 터전이다. 농부의 머리 위로 다시금 눈이 내린다. 이번엔 차갑게 그를 짓누른다.
서설은 누군가에게 복을 가져다줄지언정, 또 누군가에겐 고통과 눈물로 남는다. 마치 두 얼굴을 가진 동전처럼, 그 모습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는 바라보는 이의 처지와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어쩌면 자연의 순리와 무관심은 사람의 기대와 욕망과는 무관한 일일지도 모른다. 서설이란 이름이 그저 사람들의 바람일 뿐, 눈은 그저 눈일 뿐이다.
이러한 자연의 현실 앞에서, 우리는 어떤 시선을 가져야 할까? 농부가 흘린 눈물 위로 다시 내리는 눈을 마주하며, 눈을 무조건적으로 '복'으로 여기는 우리의 시선이 과연 옳은지 되돌아보게 된다. 그 눈을 보며 뛰놀던 아이와 강아지의 환한 웃음이 사뭇 무겁게 다가온다. 한쪽에서는 축복의 날로 기억될 눈 오는 날이, 다른 한쪽에서는 절망의 날로 남기 때문이다.
농부들은 다시 일어설 것이다. 무너진 비닐하우스를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지만, 그 눈물을 삼키고 다시 농사를 시작할 것이다. 자연의 가혹함 앞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그들의 모습이야말로 진정한 서설의 의미를 다시금 되새기게 한다. 복된 눈이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땅에서 다시 일어나는 사람의 의지에서 비롯되는 것 아닐까?
눈은 여전히 내리고 있다.
그것은 여전히 누군가에겐 희망이고, 또 누군가에겐 고난이다. 그러나 그 눈 속에서 우리는 함께 살아가야 한다. 누군가의 고통을 보듬을 수 있는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본다면, 어쩌면 서설의 진정한 복을 모두가 느낄 수 있을지 모른다.
ㅡ 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