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평론가 청람 김왕식 Dec 16.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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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우리 마을회관, 온정이 피어나는 곳
가을이 물러가고 겨울 문턱에 선 백우리 마을은 고즈넉한 풍경 속에 따스한 온기가 흐른다. 한 해 동안 논밭을 돌보느라 고된 하루를 보낸 할머니들이 마을회관으로 하나둘 모여든다. 허리가 굽도록 일한 손길이 잠시 멈추고, 마음도 몸도 녹일 수 있는 이곳은 단순한 쉼터가 아니다. 삶의 쉼표가 되고, 소소한 행복이 꽃피는 특별한 공간이다.
따끈한 온돌방에 앉은 할머니들의 손에는 고스톱 패가 들려 있고, 입가에는 환한 웃음이 가득하다. “옛날에는 말이야…”로 시작되는 옛이야기가 기억을 불러내면, “우리 강아지가 어쩌고 저쩌고” 하는 요즘 이야기가 또 다른 미소를 선사한다. 과거와 현재가 어우러진 이야기 속에는 깊은 우정과 따스한 정이 묻어난다.
“고! 스톱!” 외치는 목소리가 방 안을 울리고, 서로 장난스러운 농담을 주고받는 사이, 할머니들의 얼굴엔 밝은 빛이 번진다. 세월의 흔적으로 주름진 이마와 굽은 허리에도 소녀 시절의 천진함과 순수한 기쁨이 깃들어 있다. 젊음은 비록 몸을 떠났지만, 마음속에서 여전히 반짝이는 그들의 모습은 마을회관을 더욱 환하게 만든다.
한쪽에서는 도토리묵무침을 만드느라 손길이 분주하다. 가을 내내 정성스럽게 주워온 도토리를 밤새 쑤어낸 정성 가득한 음식이다. 김장을 마친 햇김치에 파를 송송 썰어 넣고, 막 지은 뜨끈한 밥과 함께 차려진 푸짐한 밥상에는 할머니들의 사랑과 정성이 듬뿍 담겼다. 탁주 한 잔 곁들여 흥겨운 타령까지 더해지니, 마을회관은 어느새 웃음과 노랫소리로 넘쳐난다.
이곳은 단순히 사람들이 모이는 공간이 아니다. 백우리 마을회관은 누군가에게는 추억의 보고(寶庫),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일상의 쉼표가 되는 특별한 장소다. 뜨끈한 온돌방에서 나누는 대화와 웃음, 그리고 정성 가득한 음식 냄새가 뒤섞인 이 풍경은 백우리가 간직한 소중한 자산이자 고향의 따뜻한 기억이 된다.
문 밖에는 겨울바람이 불지만, 마을회관 안에서는 한겨울에도 봄날의 온기가 피어난다. 방 안을 가득 메운 웃음소리는 마치 백우리 땅속 깊은 곳에서 솟아나는 생명수처럼 넘실댄다. 그 소리는 누군가의 마음에 오래도록 남아 따뜻한 위로가 되고, 백우리의 이야기를 품은 향기로 전해질 것이다.
백우리 마을회관에서 피어난 웃음꽃은 오늘도 사람들의 마음을 푸근히 감싸며, 이 작은 마을의 온정을 더욱 빛나게 하고 있다.
ㅡ 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