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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풍경

김왕식









지하철 풍경








지하철이 멈추고, 문이 열리자 한 젊은이가 목발에 의지한 채 천천히 오른다. 그의 모습은 마치 무겁고 거친 파도를 헤쳐나가는 배처럼 힘겨워 보인다. 다리를 다쳤는지, 목발을 짚고 있는 그의 걸음걸이엔 신중함과 고통이 배어 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잠시 흘깃 젊은이를 바라보더니 이내 고개를 숙인다. 그들의 시선은 어느새 손에 든 휴대폰 화면에 묻혀버린다. 화면 속에선 아마도 오늘의 뉴스가, 드라마의 한 장면이, 혹은 게임의 점수가 현실보다 중요하다는 듯 반짝이고 있을 것이다. 지하철 안의 침묵은 묘하게 무겁다.

그렇게 젊은이는 버티고 선다.
목발을 짚고 흔들리는 차 안에서 균형을 잡기 위해 애쓰는 그의 얼굴에는 땀이 흐른다. 그런데 그 순간, 노인석에서 백발이 성성한 할아버지가 천천히 몸을 일으킨다. 80대는 족히 되어 보이는 할아버지다. 주름진 손으로 지팡이를 짚고는, 그 힘든 몸을 이끌어 자리를 양보한다.

노인석 옆자리에는 머리를 갈색으로 염색한 건장한 장년이 앉아 있다. 65세를 갓 넘겼을 법한 그는 다리를 꼬고 앉은 채 세상을 다 가진 듯 의기양양하다. 그의 무심한 표정과 여유로운 자세는 묘한 대조를 이룬다. 힘겹게 서 있는 젊은이와 자리에서 일어선 노인, 그리고 편안히 앉아 있는 장년의 모습은 마치 오늘의 사회를 압축해 놓은 한 장의 사진 같다.

젊은이가 자리를 양보받고 앉는 순간, 지하철은 다시 출발한다. 하지만 그 풍경은 많은 질문을 남긴다. 나이가 젊다는 이유로 힘든 상황에서도 배려를 받지 못하는 현실, 양보와 배려의 의미를 알지만 외면하는 이들의 태도, 그리고 자리 하나를 양보하는 데 있어 나이와 체력이 아니라 마음의 무게가 더 중요한 시대임을 보여주는 단면.

노인의 주름진 얼굴은 그렇게 말하는 듯하다. “내 몸은 늙었지만, 마음은 아직 청춘이란다.” 그 옆의 장년은 묵묵히 휴대폰을 만지작거린다. 무엇이 그를 저렇게 의기양양하게 만든 것일까. 그리고 목발을 짚은 젊은이는 어떤 세상을 기대하며 살아갈 것인가.

지하철은 여전히 앞으로 나아간다. 사람들은 묵묵히 그 속에 앉아 각자의 세계에 빠져들고, 작은 배려 하나가 무겁게 느껴지는 이 사회의 풍경도 함께 움직인다. 이 작고 고요한 공간 안에 우리가 외면하고 있는 ‘시선’과 ‘마음’이 그 어느 때보다 크게 자리하고 있다.



ㅡ 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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