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평론가 청람 김왕식 Dec 17.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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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의 무게, 서로 다른 언어
고통은 누구에게나 찾아오지만 그 모습과 무게는 사람마다 다르다.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는 이는 차라리 육체적 고통을 바란다. 보이지 않는 아픔이 외로움을 더하기 때문이다.
반면, 육체적 고통에 시달리는 이는 정신적 고통을 사치라 여긴다. 지금, 당장의 통증이 삶의 모든 것을 잠식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고통은 서로 다른 모습으로 다가오지만, 결국 모두를 아프게 한다.
정신적 고통은 보이지 않는다. 마음 깊은 곳에 숨어 타인을 피하게 만들고 스스로를 고립시킨다.
고통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밤을 지새우는 불안과 마음에 스며드는 허무함은 사람을 서서히 무너뜨린다. 그 끝이 보이지 않기에 더 참기 어렵다. 누군가에겐 그저 '생각의 문제'라고 치부될지 모르지만, 당사자에겐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가슴을 파고든다.
육체적 고통은 다르다.
그것은 분명하고 즉각적이다. 신체를 옭아매고 움직임을 제한하며, 평범한 일상조차 허락하지 않는다. 너무나 명확한 고통이기에 정신마저 그 통증에 묶인다. 그래서 ‘마음의 문제는 사치’라고 느끼는 것이다. 통증이 있는 날들은 그 자체로 생존의 싸움이기 때문이다. 정신적 위로조차 아무 소용없을 만큼 절박해질 때가 있다.
고통을 비교할 수 있을까. 정신적 고통과 육체적 고통은 마치 서로 다른 언어로 쓰인 두 이야기 같다. 어떤 이에게는 마음의 아픔이, 어떤 이에게는 몸의 아픔이 더 견디기 힘든 현실이다. 중요한 것은 고통의 종류가 아니라, 그것이 사람을 아프게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남의 고통을 가볍게 여기고 나의 고통만을 중히 여길 때, 사람들 사이에 이해의 벽이 생긴다. 상대의 아픔을 알 수는 없어도, 인정하고 위로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사람은 누구나 고통을 겪는다. 다만 그 형태가 다를 뿐이다. 그렇기에 남의 아픔을 함부로 평가하지 말아야 한다. 누군가의 정신적 고통은 깊은 물속에 가라앉는 것처럼 숨 막히고, 누군가의 육체적 고통은 끊임없이 이어지는 가시밭길 같다. 모든 고통은 상대적이지만, 그 상대성 안에서 여전히 절대적인 아픔이 존재한다.
결국 중요한 것은 우리가 서로의 고통을 어떻게 대하느냐이다. 남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고 손을 내밀 때, 비로소 고통은 덜어질 수 있다. 육체적 고통이든 정신적 고통이든, 그것은 모두 인간이 짊어질 수밖에 없는 무게다. 그 무게를 서로 이해하고 나눌 때, 조금은 덜 아프게 살아갈 수 있다. 고통은 누구에게나 힘겹지만, 함께하는 마음이 있다면 그 고통의 끝에 조금의 위로와 희망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ㅡ 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