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평론가 청람 김왕식 Dec 17.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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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낭만 기차여행
여행은 낭만이다.
누구나 여행을 꿈꾸고 그리워한다. 특히 기억 속에 자리한 기차여행은 낭만의 정점이었다. 느릿느릿 움직이던 교외선 완행열차는 그 시절,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니었다. 그것은 우리를 새로운 곳으로 데려가는 설렘과 사람들 사이의 정을 나누게 하는 공간이었다.
기차가 출발하면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시골 풍경이 눈길을 잡아끌었다. 논과 밭, 멀리 보이는 산등성이까지, 고요한 풍경이 지친 마음을 어루만졌다.
담배 연기로 가득 찬 열차 안은 늘 활기찼다. 중년의 아저씨들은 맥주 한 캔과 삶은 달걀을 나누며 세상사를 논했고, 땅콩 한 봉지를 까며 나누는 소소한 대화가 낭만을 더했다.
한쪽 구석 바닥에 주저앉은 청바지 차림의 대학생들은 통기타를 꺼내 들었다. 기타 줄을 튕기며 시작된 '아침이슬'은 어느새 열차 안의 작은 합창으로 번졌다. 낯선 이들과도 자연스럽게 어깨를 맞대며 노래를 부르다 보면, 그 순간만큼은 모두가 친구였다. 대학생들의 맑은 목소리는 기차의 진동에 실려 이웃 칸까지 퍼져 나갔다.
시간이 흐를수록 기차 안은 더 정겨워졌다. 모르는 사람과도 스스럼없이 이야기를 나누었고, 때로는 작은 도시락 반찬까지 나눠 먹으며 웃음을 지었다. 그 공간엔 불편함 대신 온기가 있었다. 느린 열차의 속도마저도 마음을 여유롭게 해 주었고, 목적지에 대한 기대보다 지금 이 순간의 행복이 더 소중하게 느껴졌다.
지금은 그 낭만의 기차여행을 찾아보기 어렵다. 빠르고 효율적인 시대가 열차마저 바꿔놓았다. 목적지만을 향해 달리는 고속열차 안에서는 차창 밖 풍경을 음미할 틈조차 없다. 통기타를 연주하며 노래하는 이들도, 삶은 달걀을 까먹으며 소박한 행복을 나누던 풍경도 이제는 추억 속의 한 장면이 되었다.
그리운 그때의 기차여행. 모두가 다정했고, 세상이 조금 더 따뜻했던 시절. 느린 열차는 우리의 발걸음을 늦추었지만 마음만은 풍요롭게 만들었다.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없지만, 기억은 여전히 우리의 가슴 한구석에 남아 있다. 때때로 그리워지는 낭만의 완행열차는 잊히지 않는 여행의 향기이자, 아련한 추억의 노래다.
ㅡ 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