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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우리 마을, 시 쓰는 문희

김왕식







백우리 마을, 시 쓰는 문희





임금께 진상미를 올렸다 한다.

그곳 이천 산골 백우리 마을에 살고 있는 여인이 있다. 열 남매를 둔 초인 같은 그녀의 삶은 이제 전설처럼 마을에 퍼져 있다. 그녀가 사는 집은 100년이 넘은 초가삼간. 그 집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도 여전히 그대로의 모습으로 마을을 지키고 있다. 툇마루며 봉당, 섬돌과 댓돌까지 모두 옛날 그대로다. 그 집에서 한 칸은 달을, 또 한 칸은 청풍을 담아 두었고 나머지 한 칸은 그녀의 몫이었지만,
이제 열 남매 자식들의 보금자리다.

면앙정 송순이 말했던 ‘십 년 경영하여 초려 삼간’은 많은 이들에게 시처럼 남아 있다. 그러나 백우리의 이 초가삼간은 십 년 경영이 아니라, 백 년을 넘어선 세월과 그 세월을 함께 살아온 사람들의 애환이 서린 공간이다. 그곳의 주인장, 시인 한연희의 삶은 욕심보다는 나눔과 헌신으로 채워졌다. 시인의 온돌방은 여전히 장작불이 피워진다. 현대의 도회지에서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풍경이 이곳에선 일상처럼 펼쳐진다.

눈보라가 몰아치는 신새벽이면, 서울에서 ‘세련되고 우아했던 여자’라 불렸던 문희가 몸빼를 입고 선머슴이 되어 아궁이에 장작을 지핀다. 아궁이에 타오르는 장작불이 온돌방으로 퍼져 나가듯, 그녀의 삶 또한 주변에 따뜻한 온기를 전해준다. 고급스럽던 서울의 여성은 이제 산골의 어머니가 되었고, 그 손길이 닿는 곳마다 생명이 돋는다. 이천의 깊은 산골, 겨울의 혹한 속에서도 장작불은 꺼지지 않는다.

시인 문희 한연희의 모습은 단순히 한 여인의 삶을 넘어선다. 그녀는 한국의 여성이다. 아니, 조선의 엄마다. 고난과 헌신을 짊어지고 살아가는 여성들의 형상이 그녀에게서 보인다. 손끝에 묻은 재가, 장작불이 묻은 옷자락이 그녀의 역사를 대변한다. 그 역사는 마치 산과 강, 달과 청풍처럼 자연스럽게 그녀의 삶 속으로 스며들었다. 그렇게 이천의 백우리 초가삼간은 여전히 오늘을 산다.

세상은 변했지만, 그녀의 삶은 변하지 않았다. 욕심을 버리고, 자신을 덜어내며 자식을 키워낸 어머니의 손길은 여전히 따뜻하다. 문희, 그녀의 이름은 이제 단순한 이름이 아니라 하나의 상징이다. 아궁이 앞에 선 그녀의 모습은 한국 여성들의 굳건함과 강인함을 보여주는 한 폭의 그림과 같다.

이 100 년 된 초가삼간은 더 이상 단순한 집이 아니다. 삶의 터전이며, 역사의 흔적이며, 그 자체로 시다. 마을과 세월을 지키며 서 있는 집, 그리고 그 집을 지키는 시인과 여성. 그녀의 삶은 모든 이에게 잊힌 것을 일깨워 준다. 단순하고 소박한 삶, 그러나 그 속에 깃든 깊은 의미를 말이다.

그래서 누군가는 말한다. 그녀의 삶이야말로 하나의 시라고. 산골의 새벽, 장작불 지피는 그녀의 손끝에서 시작된 시는 백우리 마을과 함께 오늘도 흐르고 있다.



ㅡ 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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