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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론가 청람 김왕식 Dec 25. 2024

사랑 ㅡ 시인 노태숙

김왕식








                              사랑



                                  시인 노태숙




알 수 없는 연가로 가득 채운 내 동공의 시선
하늘 끝 희미한 구름 위에 고운 꿈 실으면

어느 틈에 가버린 내 젊음은
서리 내린 가을 들판 위
장끼 소리만 남겼다

먼 들녘 외딴집에서 손짓하는 저녁연기는
가던 길 멈추고 돌아오라는 아우성인가

노을 진 동리 어구에 머문 나그네 지친 걸음.
아무런 시선 없이 피어난 붉은 여정

울부짖는 파도 거센 바람까지
부둥켜안고 잠 못 드는 밤에도 갈매기는,
죽은 듯 벼랑 끝에서 애 태운다

그리움에 젖어 때도 없이
몸부림치다가
제 몸 깊숙이 젖은 마음 토해내고

새파란 가슴을 열어 태양빛 담금질로 태워버린
칸나빛 내 사랑이여.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노태숙 시인의 '사랑'은 인간의 내면에서 솟아나는 그리움과 사랑의 본질을 담담하면서도 시적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시는 섬세한 언어와 강렬한 이미지로 독자의 감각을 일깨우며, 사랑이란 감정의 다양한 면모를 탐구한다.

첫 연에서 "알 수 없는 연가로 가득 채운 내 동공의 시선"은 사랑의 미묘하고 정의하기 어려운 본질을 시각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이 문장은 시인이 사랑의 감정을 모호하면서도 매혹적으로 표현하려는 의도를 담고 있다. 이어지는 "하늘 끝 희미한 구름 위에 고운 꿈 실으면"이라는 구절은 희망과 환상이 섞인 사랑의 이상향을 제시하며, 독자에게 넓은 상상의 공간을 제공한다.

둘째 연에서는 "어느 틈에 가버린 내 젊음은 / 서리 내린 가을 들판 위 / 장끼 소리만 남겼다"는 구절이 등장한다. 이는 사라진 젊음과 사랑의 흔적을 자연 속에 비유하며, 그리움과 허무함을 담고 있다. 여기서 시인은 개인적인 체험과 보편적 감정을 조화롭게 엮어내며 독자에게 깊은 공감을 자아낸다.

셋째 연에서는 외로움과 갈등이 드러난다. "먼 들녘 외딴집에서 손짓하는 저녁연기"는 돌아가고 싶은 마음과 갈등하는 현재를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시어의 감각적 묘사는 독자가 사랑과 그리움의 무게를 더욱 생생히 느끼게 한다.

마지막 연에서 "칸나빛 내 사랑이여"로 끝맺으며 사랑의 열정적이고도 고통스러운 본질을 강조한다. 칸나꽃의 강렬한 붉은색은 사랑의 불타오르는 열정과 그 뒤에 숨은 고통과 아픔을 상징적으로 담아내고 있다. 이러한 표현은 시의 감정을 절정으로 끌어올리며, 독자에게 잊히지 않을 강렬한 여운을 남긴다.

노태숙 시인은 사랑의 다양한 면모를 섬세한 시어로 표현하며, 자연과 감정을 유기적으로 결합하는 데 성공했다. 또한, 시어의 이미지가 강렬하고 감각적이며, 시적 언어의 밀도가 높아 시의 완성도를 더하고 있다.
다만, 몇몇 구절에서는 의미의 연결이 다소 모호하게 느껴질 수 있다.
예를 들어, "울부짖는 파도 거센 바람까지 / 부둥켜안고 잠 못 드는 밤에도 갈매기는" 구절은 매우 인상적이지만, 독자로 맥락을 이해하는 데 약간의 어려움을 줄 수 있다.
 이 부분에서 좀 더 구체적인 연결 고리를 제시한다면 작품의 서사적 흐름이 강화될 것이다.

요컨대, '사랑'은 노태숙 시인의 미의식을 온전히 담아낸 작품으로, 사랑이라는 감정의 복합성을 시적으로 탐구하고 있다. 다소 모호한 표현이 시적 아름다움으로 작용하기도 하지만, 약간의 명료성을 더한다면 더욱 많은 독자들에게 깊은 울림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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