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평론가 청람 김왕식 Jan 01. 2025

휠체어 댄스  ㅡ 시인 한강

김왕식







              휠체어 댄스


                                시인 한강





눈물은
이제 습관이 되었어요
하지만 그게
나를 다 삼키진 않았죠

악몽도
이제 습관이 되었어요
가닥가닥 온몸의 혈관으로
타들어오는 불면의 밤도
나를 다 먹어치울 순 없어요

보세요
나는 춤을 춘답니다
타오르는 휠체어 위에서
어깨를 흔들어요
오, 격렬히

어떤 마술도
비법도 없어요
단지 어떤 것도 날
다 파괴하지 못한 것뿐

어떤 지옥도
욕설과
무덤
저 더럽게 차가운
진눈깨비도, 칼날 같은
우박 조각들도
최후의 나를 짓부수지 못한 것뿐

보세요
나는 노래한답니다
오. 격렬히
불을 뽑는 휠체어
휠체어 댄스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한강의 시 '휠체어 댄스'는 극한의 고통과 절망 속에서도 인간의 존엄과 생명력을 포기하지 않는 강렬한 의지를 담고 있다.
시인은 휠체어라는 구체적 상징을 통해 역경 속에서도 생의 춤을 추는 모습을 그려내며, 고통이 습관이 된 삶을 경멸이 아닌 승화의 대상으로 바라본다. 이는 그의 삶과 작품 전반에 스며 있는 가치 철학과 깊이 연결된다.

한강의 시 세계는 인간의 내적 존엄을 부각하는 동시에, 극한의 현실 속에서도 꺾이지 않는 생명의 에너지를 응축시킨다.
이 시에서도 "눈물"과 "악몽" 같은 고통의 이미지가 단순한 절망의 재현으로 머무르지 않고, 이를 이겨내는 과정을 통해 인간적 승리를 이야기한다. 이는 단지 고난을 이겨낸다는 차원을 넘어, 고통 자체를 예술로 승화시키는 삶의 태도를 보여준다.

특히 "타오르는 휠체어 위에서 어깨를 흔들어요 / 오, 격렬히"라는 구절은 시인이 고통 속에서도 춤추는 인간을 상상하며 내면의 에너지를 격정적으로 표출하는 장면을 형상화한다.
여기서 '휠체어'는 단순한 신체적 한계의 상징이 아니라, 불굴의 의지와 생명의 역동성을 담아낸 도구로 탈바꿈한다.

한강은 이 작품을 통해 고통과 지옥 같은 현실의 여러 상징들ㅡ“칼날 같은 우박 조각들”, “저 더럽게 차가운 진눈깨비”ㅡ 을 제시하지만, 그것들은 결코 시적 자아를 파괴하지 못한다. 오히려 시적 자아는 이러한 모든 외적 환경을 초월하여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는” 존재로 거듭난다. 이 같은 초월적 의지는 한강 문학의 근본적 미의식을 함축적으로 드러낸다.

요컨대, 휠체어 댄스는 단순히 장애와 고통을 묘사하는 작품을 넘어, 이를 예술적 승리로 승화시키는 시적 성취를 이룬다. 한강의 삶과 철학이 응축된 이 시는 생명력과 존엄의 서사로서, 고통을 초월하는 인간 정신의 숭고함을 독창적으로 형상화했다.
한강 시인의 이 시는 고통 속에서 피어난 인간 존엄의 불꽃이며, 생명을 찬미하는 시적 예술의 정수라 할 수 있다.



ㅡ 청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