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평론가 청람 김왕식 Jan 5.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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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도 烏耳島
한강
내 젊은 날은 다 거기 있었네
조금씩 가라앉고 있던 목선 두 척. 이름 붙일 수 없는 날들이 모두 밀려와 나를 쓸어안도록
버려두었네
그토록 오래 물었던 말들은 부표로 뜨고
시리게
물살은 빛나고
무수한 대답을 방죽으로 때려 안겨주던 파도
너무 많은 사랑이라
읽을 수 없었네 내 안엔
너무 더운 핏줄들이었네 날들이여 덧없이
날들이여
내 어리석은 날
캄캄한 날들은 다 거기 있었네 그곳으로 한데 흘러 춤추고 있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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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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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시인의 작품 '오이도烏耳島'는 시인의 젊은 날에 대한 기억과 감정, 그리고 그것을 품고 있는 시간과 공간의 흐름을 통해 삶의 본질에 대해 깊은 통찰을 드러낸다.
이 시는 물리적인 장소인 오이도를 배경으로 삼아, 시인이 그곳에서 경험했던 모든 것들이 삶의 본질과 연결되어 있음을 상징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를 통해 한강 시인은 지나간 시간 속에서도 여전히 살아 숨 쉬는 감정과 기억의 가치를 부각한다.
시의 첫 구절, "내 젊은 날은 다 거기 있었네, "는 과거의 시간이 특정한 공간에 깊이 새겨져 있음을 표현하며, 이는 단순한 추억을 넘어 시인의 내면에 자리한 본질적인 삶의 흔적을 상징한다. "조금씩 가라앉고 있던 목선 두 척"이라는 이미지는 시간의 흐름과 삶의 무게를 상징적으로 나타내며, '목선'은 기억의 저장소이자 삶의 노정을 담고 있는 그릇으로 기능한다. 또한, "이름 붙일 수 없는 날들"이라는 표현은 언어로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과 경험들을 암시하며, 이러한 모호함은 삶의 다층적인 의미를 드러내는 중요한 요소이다.
한강 시인은 자연의 이미지와 함께 내면의 심리적 상태를 섬세하게 엮어낸다. "부표로 뜨고 시리게 빛나는 물살"은 아련한 기억과 그리움을 상징하며, 동시에 지나간 시간 속에서도 여전히 빛나는 삶의 조각들을 떠올리게 한다.
특히 "너무 많은 사랑이라 읽을 수 없었네"라는 구절은 한강 시인의 미의식을 잘 드러내는 대목으로, 이는 사랑과 삶의 본질이 단순히 이해나 해석의 대상이 아니라, 오히려 느끼고 품는 것이어야 함을 암시한다.
또한, 시는 "덧없음"과 "어리석음"이라는 단어를 통해 인간 존재의 한계를 드러내면서도, 이러한 한계를 수용하고 초월하려는 태도를 보여준다. "캄캄한 날들"조차 결국 춤추며 한데 어우러지는 모습은 고통과 어둠 속에서도 삶의 본질은 계속해서 흘러가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한강 시인의 작품 세계는 삶의 가치 철학과 연결되어 있다. 그는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그것을 초월하려는 의지, 사랑과 고통의 복합적인 감정을 수용하려는 태도를 통해 삶을 보다 깊고 풍요롭게 바라본다.
그의 시는 단순히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삶의 본질을 탐구하며 독자로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만든다. 한강의 작품은 독자에게 삶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볼 기회를 제공하며, 그의 미의식은 인간 존재의 고귀함과 덧없음을 동시에 포용한다.
요컨대, 오이도는 한강 시인의 삶에 대한 깊은 통찰과 미의식을 담아내며, 단순히 회고적인 정서에 머무르지 않고, 독자에게 삶의 본질에 대한 성찰을 불러일으키는 작품이다.
ㅡ 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