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평론가 청람 김왕식 Jan 9.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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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부지깽이
어머니의 부지깽이는 그녀의 삶 전체를 상징하는 도구였다. 1930년 태어나 험난한 시대를 살아야 했던 어머니는 그 어린 나이에 정신대라는 잔혹한 현실을 피해 14살에 시집을 왔다. 그 작은 어깨에 인생의 무게를 미처 알지 못한 채 시집살이를 시작했을 것이다. 19살의 나이에 첫 딸을 낳으며, 그녀는 소녀에서 어머니로, 가정을 책임지는 사람으로 급히 자라나야 했다.
그러나 그녀의 인생은 이른 나이, 33세에 남편을 잃으며 더욱 가혹한 시련의 길로 접어든다. 홀로 남은 어머니는 시어머니를 모시고 7남매를 키워야 했다. 새벽녘이면 누구보다 먼저 일어나 가마솥에 불을 지피고, 손에는 언제나 부지깽이를 들고 있던 그녀의 모습은 자식들에게 가장 익숙한 장면이었다. 부지깽이는 어머니의 손에서 떨어질 줄 몰랐고, 그것은 그녀의 희생과 헌신의 상징이었다.
어머니의 삶에는 자신을 위한 시간이 없었다. 그녀는 한 번도 박가분이나 동동구루무를 발라보지 못했다. 삶의 치열한 현장에서, 그녀의 얼굴은 시커먼 수건으로 가려져 있었고, 손은 늘 거칠게 갈라졌다.
8할이 아궁이 앞에서 밥을 지으며 보낸 삶. 가족을 위해, 자식들을 위해 그렇게 살았다.
그럼에도 어머니의 삶은 짧았다. 59세, 아홉수의 저주처럼 환갑도 넘기지 못하고, 마지막 숨을 쉬며 눈을 감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그 순간까지 그녀는 자식들을 걱정했을 것이다. 어머니의 부지깽이는 끝까지 놓지 못한 사랑의 도구였다.
이 글을 쓰며 문득 가슴이 미어 온다. 어머니의 삶은 오롯이 가족을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정작 자신을 돌보지 못한 채 그렇게 세월 속으로 사라졌다. 한 번이라도 어머니가 자신의 시간을 가졌더라면, 한 번이라도 자신을 위해 웃어 보일 기회를 가졌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어머니는 평생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스스로를 희생했다.
어머니가 떠난 후, 그녀의 부지깽이는 아궁이 한쪽에 조용히 놓여 있다. 아무도 그 도구를 사용하지 않는다. 이제는 필요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그것을 다시 잡으려 하면 어머니의 희생과 사랑이 떠올라 가슴이 먹먹해지기 때문이다. 그 부지깽이는 어머니의 인생을 대변하는 유물처럼 남아, 그녀의 삶의 흔적을 말없이 전해준다.
이제는 어머니의 희생을 단순히 슬퍼하기보다, 그녀가 우리에게 남긴 사랑과 헌신을 마음 깊이 새기며 살아가고자 한다. 어머니가 우리 곁을 떠났지만, 그녀가 가마솥 옆에서 부지깽이를 들고 있던 그 모습은 우리의 기억 속에서 영원히 살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녀의 삶이 헛되지 않도록, 그녀가 보여준 사랑과 희생을 되새기며 앞으로의 삶을 살아갈 것이다.
어머니의 삶은 짧았지만, 그녀가 남긴 사랑은 영원하다.
ㅡ 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