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평론가 청람 김왕식 Jan 13.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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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 어머니라는 이름
몇 해 전, 미국의 한 초등학교 과학 시간.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이런 문제를 냈다.
"첫 글자가 M으로 시작하며, 상대를 끌어당기는 성질이나 힘을 가진 단어를 쓰시오."
정답은 magnetic(자석)이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학생들의 85% 이상이 mother(어머니)라고 적었다.
선생님은 고민 끝에 mother를 정답으로 인정했다.
아이들이 가장 먼저 떠올린 ‘끌어당김’의 존재가 어머니였다는 사실은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얼마 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단어 1위로도 '어머니'가 선정되었다.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눈빛은 젖먹이 아이를 바라보는 어머니의 눈동자이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은 아이에게 젖을 먹이는 어머니의 모습이라는 말도 있다.
사진전시회에서 본 한 장의 사진이 기억에 남는다.
"기다림"이라는 제목의 사진.
해질 무렵, 동구 밖 느티나무 아래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여인의 뒷모습이었다.
품에 아이를 안고 서 있는 그 모습만으로도 가슴이 뭉클했다.
그것은 어머니의 기다림이자, 그리움이었다.
어머니는 기다림과 그리움의 또 다른 이름이다.
어릴 적에는 아버지를 기다리고, 어른이 되어서는 자식을 기다린다.
기다릴 수 있고, 그리워할 사람이 있다는 것은 곧 사랑이며, 행복이다.
사랑은 기다림이고, 그리움이다.
그래서 그리움과 기다림은 사랑의 또 다른 이름이다.
전쟁이 나면 아버지는 짐을 챙기고 몸을 피하지만, 어머니는 자식을 품에 안고 방패가 된다.
이런 사랑은 동물도 마찬가지다.
한 시골 마을에서 불이 났을 때, 불이 꺼지고 난 뒤 광에서 발견된 암탉은 병아리들을 품은 채 새까맣게 타 있었다.
그 품 안의 병아리들은 모두 살아 있었다.
안타깝게도 세상은 변해가고 있다.
가족여행을 떠난 자식이 늙은 어머니를 홀로 남겨두고 돌아오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들려온다.
결국 어머니는 양로원으로 보내졌지만, 끝내 자식의 이름과 주소를 밝히지 않으셨다.
자식은 어머니를 잃을 수 있어도, 어머니는 자식을 결코 잊지 못한다.
어머니가 곁에 계실 때는 번거롭고 불편하게 느껴졌던 순간도 있었지만,
돌아보면 어머니는 모든 것을 품어주시고, 모든 것을 내어주시고도 그것을 기억하지 않으셨다.
어머니.
그 이름은 영원한 안식처이자, 마음의 고향 같은 존재다.
불러도 불러도 끝없이 그리운, 가슴 깊은 향수와도 같은 이름.
이 세상에서 나보다 나를 더 사랑해 주신 단 한 사람.
그토록 그립고도 그리운, 나의 어머니셨다.
이제는 점점 사라져 가는 孝의 마음을 다시 새겨야 할 때다.
어머니의 그 깊고 넓은 사랑을 기억하고,
그 사랑을 삶 속에서 실천하며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우리 모두에게는 그리움이라는 이름으로 남아 있는,
그리고 아직 곁에 계신다면 더없이 소중히 모셔야 할,
영원한 사랑의 이름, 어머니가 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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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께 드리는 늦은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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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오늘따라 어머니의 주름진 손등을 바라보다가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저를 품고, 먹이고, 입히며 한평생을 헌신하신 어머니 앞에 저는 너무나도 작은 사람이었습니다. 이렇게 병상에 누워계신 어머니를 돌보며 문득 깨달았습니다. 저는 참으로 불효자였음을요.
어릴 적, 어머니의 손은 늘 거칠었습니다. 논밭에서 일하고 돌아오셔도 가족을 위해 따뜻한 밥상을 차리셨고, 제 옷이 해지면 밤늦게까지 바느질을 하셨습니다. 그 손이 참 크고 듬직했는데, 그때 저는 그저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머니의 고단함을 외면한 채, 제 욕심과 불만만 가득 안고 살았습니다.
세월이 흘러 저는 어른이 되었고, 세상살이에 치여 바쁘다는 핑계로 어머니의 안부조차 자주 묻지 않았습니다. 명절에 찾아뵙는 것도 때론 짐처럼 느껴졌고, 어머니의 긴 말씀을 건성으로 듣던 제 모습이 지금도 선명합니다. 어머니가 전화하시면 바쁘다며 급히 끊고, 작은 선물 하나 건네지도 못했던 지난날들이 죄스러워 견딜 수 없습니다.
이제는 어머니가 제 이름을 힘겹게 부르시고, 제 손을 잡으시지만 그 힘마저도 예전 같지 않습니다. 그 손마저도 앙상하고 마르고, 어쩌다 손등을 쓰다듬으면 그 차가운 온기에 눈물이 쏟아집니다. 어머니, 이렇게 힘겹게 숨을 쉬시는 모습을 보며 저는 왜 이제야 어머니의 사랑이 얼마나 큰지 깨닫게 되었을까요.
어머니, 죄송합니다.
더 건강하실 때 더 많이 웃게 해드리지 못해서,
어머니의 고단함을 가볍게 여기고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지 못해서,
바쁘다는 핑계로 어머니를 자주 찾아뵙지 못해서 너무나 죄송합니다.
이제라도 어머니의 손을 꼭 잡고, 작은 목소리에도 귀 기울이며, 어머니 곁을 지키겠습니다. 어머니가 내어주신 사랑을 다 갚을 수 없겠지만, 남은 날들이 어머니께 작은 위로가 될 수 있도록 정성을 다하겠습니다.
어머니, 사랑합니다.
어머니가 제게 주신 사랑을 이제야 알아버린 불효자를 용서해 주세요.
그리고 부디 편안히 쉬세요.
당신의 못난 아들이,
눈물로 이 편지를 씁니다.
ㅡ 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