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평론가 청람 김왕식 Jan 17.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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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하늘 너머, 오빠의 서울
정용애
희미한 새벽빛이 어스름히 깔릴 무렵, 먼 동쪽 하늘이 서서히 열리고 있었다. 바다 건너에서 들려오는 배의 고동소리가 고요한 마을을 깨우고, 제주도와 육지를 오가는 큰 배는 통통거리며 잔잔한 물살을 가르며 나아갔다. 그 너머 어딘가에 서울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어린 마음에는 그곳이 얼마나 먼지, 어떤 모습인지 알 길이 없었다. 서울 간 오빠의 편지가 왜 이리도 오지 않는 걸까. 나는 토방에 앉아 *새빡 멍하니 바라보며 마음속으로 수없이 되뇌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하늘은 더 맑아지고, 바람은 고춧잎을 살랑살랑 흔들었다.
그때였다.
"따르릉, 따르릉!"
고요한 마을에 자전거 벨소리가 울렸다. 까만 모자를 쓴 우체부 아저씨가 자전거를 타고 다가오셨다. 두 눈이 반짝이며 다가가던 나에게 아저씨는 손에 꼭 쥔 편지를 내밀며 말씀하셨다.
"정양아, 서울 간 오라버니한테서 편지가 왔당께."
그 순간, 심장이 콩콩 뛰었다. 조심스레 편지를 받아 쥐고는 달려가며 소리쳤다.
"아부지, 엄매! 오빠 편지가 와부렀소!"
토방에 앉아 편지를 펼치고 또박또박 읽어 내려갔다.
"보고 싶은 내 동생아, 아부지 엄매 잘 모시고 있느냐…"
한 줄, 두 줄 읽어갈수록 아버지와 어머니의 눈가엔 눈물이 맺혔다. 둘도 없는 우리 오빠. 오늘따라 왜 이렇게 더 보고 싶을까. 마음 한켠이 저려와 나는 그 마음을 움켜쥔 채 집 뒷산으로 달려 올랐다. 저 멀리 육지를 향해 솟은 산봉우리들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저 산을 몇 번이나 넘어야 오빠가 있는 서울에 닿을까. 눈을 감고 떠올려보아도 서울의 모습은 선명히 그려지지 않았다.
바람이 스치고,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새들의 노래는 마치 내 마음을 어루만지듯 고요하게 울려 퍼졌다. 나는 그 소리를 뒤로하고 집으로 달려왔다. 두 팔을 벌려 나를 꼭 안아주신 엄마.
"너의 마음 안다. 엄매 무릎에 앉아볼래?"
그 말씀이 어찌나 따뜻하게 들리던지. 그때 엄마의 얼굴이 왜 그리도 측은해 보였을까. 그리움은 엄마의 마음도 깊숙이 적시고 있었던 것이다.
시간이 흘러 추석이 다가오자, 도시에서 살던 동네 오빠들이 손마다 선물보따리를 들고 고향으로 내려왔다. 조용하던 마을은 웃음소리로 가득 찼고, 초가지붕 위 굴뚝에서는 연기가 펑펑 피어올랐다. 어디서든 음식 냄새가 진동했지만, 우리 집은 어쩐지 그 냄새가 조금 덜했다. 나는 마루에 앉아 상상에 잠겼다. 서울에서 살다가 고향으로 돌아오는 모습을 그려보았다.
그때, 영희와 순자가 뛰어오며 나를 불렀다.
"용림아!"
나는 그 아이들을 보고 깜짝 놀라 물었다.
"오매, 너네들 얼굴하고 팔다리가 왜 그렇게 하얘졌당가?"
영희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앗따, 서울 물에는 몸속에 소독약을 넣는다네. 그 물로 빨래하고, 세수하고, 밥도 해 먹고, 마시니까 몸뚱이가 해해진 거 아니여!"
그 말을 들은 나는 깜짝 놀랐다.
"물에 소독약을 넣는다고야? 오매, 서울 가고 싶었는디 안 갈란다."
서울에 대한 동경은 두려움으로 바뀌었다. 그날 밤, 나는 오빠에게 조심스레 편지를 썼다.
"보고 싶은 우리 오빠, 이 동생은 아부지 엄매 잘 모시고 있을랑께요. 오빠는 몸조심하고 물 조금씩만 마시고, 잘 지내시다가 고향 오실 때는 예쁜 내 옷 하나 사가지고 오시오. 고향에서 동생 올림."
작은 손으로 꾹꾹 눌러쓴 편지. 그 편지 한 장에 담긴 그리움과 사랑이 오빠에게 닿기를 바랐다.
밤하늘에 별이 하나둘 떠오르고, 멀리서 들려오는 풀벌레 소리가 내 마음을 감싸 안았다. 비록 서울은 멀고, 그곳의 모습은 상상조차 할 수 없지만, 오빠가 무사히 돌아올 그날을 기다리며, 나는 다시 토방에 앉아 먼 하늘을 바라보았다.
저 멀리 어디쯤에 있을까, 오빠가 있는 서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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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빡 ㅡ '대문'의 전라도 사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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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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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애의 작품 '먼 하늘 너머, 오빠의 서울'은 어린 시절의 순수한 감정과 가족 간의 깊은 사랑, 그리고 고향의 풍경을 섬세하고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글 전체에 흐르는 순박하고 정감 어린 문체는 작가의 삶의 가치관을 고스란히 담아내며, 가족을 향한 애틋한 마음과 고향의 정취를 문학적으로 승화시켰다.
작품은 어린 주인공이 오빠의 편지를 기다리는 모습에서 시작해, 편지를 받고 기뻐하는 순간, 그리고 서울에 대한 막연한 동경과 두려움이 교차하는 감정까지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이는 정용애 작가가 삶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과 세심한 관찰력에서 비롯된 결과로, 소소한 일상 속에서도 깊은 감동을 자아낸다.
특히, 부모님의 눈물, 엄마의 다정한 품, 그리고 오빠를 향한 그리움은 가족 간의 사랑이라는 보편적이지만 변치 않는 가치를 담담하게 풀어내어 독자들의 마음을 울린다.
또한, 마을의 풍경 묘사와 계절의 흐름 속에서 느껴지는 고향의 정취는 작가의 미의식이 잘 드러나는 부분이다. 초가지붕 위로 피어오르는 연기, 굴뚝 사이로 퍼지는 음식 냄새, 들려오는 새소리와 풀벌레 소리 등은 자연과 어우러진 고향의 따뜻함을 고스란히 전한다.
이는 자연과 인간이 조화롭게 살아가는 삶의 가치를 소중히 여겼던 작가의 철학과도 맞닿아 있다.
작품 속 오빠가 있는 ‘서울’은 주인공에게 막연한 동경의 대상이자 두려움의 공간으로 그려진다. 하지만 그 서울조차도 결국은 가족과 연결된 존재로서, 도시와 농촌, 거리와 마음의 간극을 따뜻하게 이어주는 매개체가 된다.
이는 단순한 공간적 묘사를 넘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를 좁히고 연결하는 삶의 가치를 강조하는 작가의 관점을 엿볼 수 있게 한다.
정용애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피어나는 사랑과 그리움, 그리고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삶의 소중함을 섬세하게 풀어냈다. 그의 글은 화려하지 않지만 담백하고 깊은 울림을 전하며, 누구나 마음속에 품고 있는 고향과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일깨운다.
이러한 따뜻한 서정성과 인간미 넘치는 시선은 정용애 작가가 추구하는 삶의 본질과 미의식을 여실히 보여준다.
'먼 하늘 너머, 오빠의 서울'은 단순한 어린 시절의 기억을 넘어, 시대를 초월한 보편적 감정인 사랑과 그리움을 아름답게 승화시킨 작품이다. 가족과 고향, 그리고 자연에 대한 깊은 애정이 녹아 있는 이 글은 독자들에게 삶의 소중한 가치를 다시금 돌아보게 만드는 따뜻한 울림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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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애 작가님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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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님의 글 '먼 하늘 너머, 오빠의 서울'을 읽고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마음 한편에 잔잔한 파문이 일어 오래도록 여운이 남습니다. 어린 시절의 순수한 감정과 가족을 향한 애틋한 그리움, 그리고 고향의 따스한 풍경이 너무도 아름답고 섬세하게 그려져 있어서 마치 제가 그 시절, 그 마을에 함께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편지를 애타게 기다리던 어린 소녀의 마음이 제 마음과 겹쳐져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우체부 아저씨의 자전거 소리, 까만 모자를 쓴 모습, 손에 꼭 쥔 편지를 받아 들고 부모님께 달려가 읽어드리던 장면은 너무나도 생생해서 그 따뜻한 순간이 고스란히 전해졌습니다. 오빠의 편지를 통해 가족 간의 사랑과 그리움이 얼마나 깊은지 느낄 수 있었고, 그 감정이 저절로 제 마음을 울렸습니다.
작가님께서 풀어내신 고향의 풍경도 참으로 아름다웠습니다. 초가지붕 위로 피어오르는 연기, 마을을 가득 채운 음식 냄새, 멀리서 들려오는 고동소리와 새들의 지저귐까지 모두가 마치 오래된 사진첩을 한 장 한 장 넘기듯 눈앞에 그려졌습니다. 그 속에서 자연과 사람, 계절과 마음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모습은 우리가 잊고 지낸 소중한 일상의 한 조각임을 일깨워 주었습니다.
특히, "엄매 무릎에 앉아볼래?"라는 어머니의 말씀이 너무도 따뜻하게 다가왔습니다. 사랑하는 자식을 다독이고 품어주는 그 마음이 얼마나 깊고 넓은지 새삼 깨달았습니다. 그 순간, 저도 제 어머니를 떠올렸습니다. 아무 말 없이 품에 안아주시던 어머니의 따스한 품과 눈빛이 겹쳐져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또한, 서울에 대한 막연한 동경과 두려움이 교차하는 주인공의 마음이 너무나도 순수하고 진솔하게 다가왔습니다. 소독약을 넣은 물 이야기에 겁을 먹고 오빠에게 걱정 어린 편지를 쓰는 모습은 그저 귀엽고 사랑스러웠습니다. 하지만 그 속에는 가족을 향한 걱정과 사랑이 담겨 있어 더욱 애틋했습니다.
작가님의 글은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라, 한 편의 시와 같았습니다. 문장 하나하나가 곱씹을수록 깊은 의미를 전했고, 고운 마음씨가 글 속에 고스란히 묻어났습니다. 아련한 그리움과 따뜻한 사랑이 담긴 글을 통해 저 역시 제 가족과 고향을 떠올리고, 마음 깊이 간직했던 소중한 기억들을 되살릴 수 있었습니다.
요즘처럼 빠르게 변하고 바쁘게 살아가는 세상에서 작가님의 글은 저에게 잠시 멈춰 서서 내 마음속 가장 따뜻했던 순간들을 꺼내보게 했습니다. 우리가 잊고 살았던 가족의 소중함, 고향의 포근함, 그리고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삶의 아름다움을 다시금 느끼게 해 주셨습니다.
이렇듯 진심이 담긴 글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따뜻함과 위로를 전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작가님의 글을 읽으며 저도 소중한 사람들에게 더 자주 마음을 전해야겠다는 다짐을 했습니다.
언젠가 고향에 내려가 부모님의 손을 꼭 잡고, 그동안 미뤄왔던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졌습니다.
앞으로도 작가님의 따뜻한 시선과 깊은 이야기가 많은 이들에게 위로와 감동을 전하길 바랍니다. 언제나 건강하시고, 마음속에 품고 계신 이야기를 오래도록 아름답게 써 내려가시길 응원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