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평론가 청람 김왕식 Jan 17. 2025
■
석모도
정훈식
검고 사나운 바람
내 마음 뒤흔들던 오후
어머님이 지어주신
목화솜 두터운 한복 걸치고
동지녘 거친 해변가
어둠 속 더듬어
토방에 기어들다
ㅡ
반 세기 전 재수 시절, 어머님의 권고로 강화 석모도 보문사에서 여남은 날 머문 적 있습니다. 처량하기 짝이 없는 막내에게 한복을 내주시며 한갓 기대를 하셨을 겁니다. 그러나 어머님 살아생전에 그 아들은 밭은 숨을 몰아쉬며 허둥되기 일쑤였습니다. 얼마나 속상하셨을까요? 출세는커녕 장가라도 들 수 있을까 하시며 낙담하셨을 겁니다. 그래도 하늘은 무심치 않아 석모도 처녀를 아내로 삼아 요즘 주렁주렁 일가를
이뤘답니다.
엊그제도 그 옛날 한복에 명주 목도리를 두르고 어머님을 소리 높여 울었습니다. 이제 새봄 되어 종달새 지저귈 때 막내집에 놀러 오세요. 그럼 그 가난한 시절의 어머님 소원을 살짝 여쭙고 싶습니다
■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ㅡ
정훈식 작가의 시 석모도는 개인적인 기억과 가족의 사랑이 어우러진 따뜻한 서정시다. 검고 사나운 바람 속에서 어머니가 지어주신 목화솜 한복을 입고 해변을 걷는 화자의 모습은 거친 자연과 인간의 내면을 조화롭게 담아낸다. 이 시는 단순한 회고를 넘어, 어머니의 사랑과 기대, 그리고 그에 대한 아들의 애틋한 마음을 고스란히 전달한다.
어둠 속에서 더듬어 토방에 기어드는 모습은 화자의 나약함과 동시에 어머니 품으로 돌아가고 싶은 간절한 마음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시의 후기에 담긴 작가의 회상은 더욱 깊은 울림을 준다. 출세는 고사하고 결혼조차 걱정하셨던 어머니의 애틋한 마음과, 그럼에도 결국 석모도에서 만난 인연으로 가정을 이루었다는 고백은 삶의 역설적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어머니의 소망을 이루지 못했다는 아쉬움과, 이미 돌아가신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눈물짓는 모습은 독자에게 진한 감동을 전한다.
정훈식 작가는 삶의 고난과 가족의 사랑을 담담하고 솔직하게 풀어내며, 인간 존재의 연약함과 따뜻함을 시적으로 승화시킨다. 그의 작품은 개인적 서사를 넘어서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감정과 삶의 진실을 담고 있다. 이는 자연과 인간의 내면을 긴밀히 연결시키며, 일상의 소소한 기억조차도 깊은 울림을 주는 예술로 승화시킨다.
작품 전반에 흐르는 미의식은 단순함 속에 숨어 있는 깊은 감정과 진실성을 통해 더욱 빛난다. 화려하거나 과장되지 않은 담백한 언어는 오히려 독자에게 더 큰 울림을 주며, 자연과 인간, 그리고 가족 간의 사랑을 섬세하게 풀어낸다.
특히 어머니의 한복과 목도리라는 구체적이고 따뜻한 소재는 작품의 서정성을 더욱 풍부하게 만든다.
정훈식 작가의 작품은 삶의 진정한 가치를 사랑과 가족, 그리고 자연 속에서 발견하고, 이를 통해 인간 존재의 따뜻함과 아름다움을 일깨운다. 그가 추구하는 삶의 철학은 '소박하지만 진실한 삶'이며, 이는 그의 시 속에 온전히 녹아들어 있다. 독자는 그의 시를 통해 삶의 소중함과 사랑의 의미를 다시금 깨닫게 된다.
ㅡ 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