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평론가 청람 김왕식 Jan 18.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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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상이 곧 실상
허상이 곧 실상이라는 말은 얼핏 보기에 모순처럼 보인다. 허상은 실제하지 않는 모습, 착각이나 환상을 의미하고, 실상은 진짜 존재하는 현실을 뜻하기 때문이다. 이 문장을 깊이 사색하면, 허상과 실상이 엄연히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맞닿아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의 인식과 삶 속에서 허상이 때로는 실상이 되고, 실상이 허상처럼 느껴지는 순간들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사회적 지위나 물질적 성공을 생각해 보자. 많은 사람들이 부와 명예를 얻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 이들은 돈과 권력을 얻으면 행복해질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
막상 목표를 이루고 나면, 기대했던 행복은 허상이었음을 깨닫기도 한다. 반대로, 겉으로는 아무것도 가진 것 없어 보이는 삶이 누군가에게는 진정한 평안과 만족을 주는 실상일 수 있다.
결국 우리가 추구하는 성공과 행복이라는 개념 자체가 허상인지 실상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것이다.
또한, SNS에서의 모습을 떠올려보자. 우리는 SNS에 자신이 행복하고 성공적인 모습을 올리지만, 그 이면에는 불안과 외로움이 숨어 있을 수 있다. 타인의 화려한 사진과 글을 보며 부러움이나 열등감을 느끼지만, 그들이 올린 모습이 실상이 아닐 수도 있다. 이러한 허상이 누군가의 마음에 깊은 영향을 미치고, 그 허상이 실질적인 감정과 행동으로 이어진다면 허상은 실상이 된 셈이다. 결국 허상은 단순한 착각이 아니라 우리의 삶에 실질적으로 작용하는 힘이 된다.
철학적으로도 '허상이 곧 실상'이라는 관점은 깊은 의미를 지닌다. 불교에서는 모든 것은 무상(無常)하고 공(空)하다고 말한다. 이 세계의 모든 현상은 변하고 사라지기에 실체가 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실상이라고 믿는 것도 끊임없이 변화하며, 그 본질은 허상에 가깝다.
그 허상 속에서 살아가고 느끼며 행동하기에, 그것이 곧 우리의 실상이다. 예를 들어, 안개 낀 풍경은 순간적으로 흐릿하고 모호해 보이지만, 그 안에서도 나무는 서 있고, 바람은 분다. 안개가 있다고 해서 풍경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안갯속에서도 풍경은 존재한다. 이처럼 허상은 실상을 감추는 것이 아니라, 실상의 한 부분일 수 있다.
예술에서도 이러한 개념을 자주 발견할 수 있다. 화가 르네 마그리트의 작품 중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는 그림이 있다. 그림 속에는 분명 파이프가 그려져 있지만, 이는 실제 파이프가 아닌 그림일 뿐이다. 그림은 파이프의 '허상'이지만, 관람자에게는 분명 '실상'으로 받아들여진다. 예술 작품은 허상과 실상의 경계를 무너뜨리며, 상상과 현실이 교차하는 공간을 만든다.
또한 꿈도 좋은 예가 된다. 꿈속에서는 우리가 느끼는 감정이나 경험이 매우 생생하다. 두려움, 기쁨, 슬픔 같은 감정들은 꿈이라는 허상에서 비롯되지만, 실제 감정은 현실의 감정과 다르지 않다. 악몽을 꾸고 난 뒤에 느끼는 공포나 불안은 꿈이라는 허상이 우리에게 실질적인 영향을 미친다. 이처럼 허상은 실상과 별개가 아니라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현대 사회에서도 이러한 현상은 명확하다. 광고나 마케팅은 소비자에게 특정 이미지를 심어준다. 어떤 브랜드의 가방이나 옷을 갖게 되면 성공적이고 세련돼 보일 것이라는 이미지를 심어주지만, 그것이 진짜 자신을 변화시키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은 그 이미지를 실상으로 믿고 제품을 구매하며 자신을 꾸민다. 이렇게 허상은 곧 실상이 되어 우리의 행동을 지배한다.
결국, 허상이 곧 실상이라는 말은 우리가 보고 믿는 것, 느끼는 것들이 단순한 착각이나 환상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구성하는 실질적인 부분임을 말한다. 허상은 우리가 현실이라 믿는 실상을 움직이고, 실상은 때로 허상처럼 느껴진다. 이 둘은 명확히 나뉘는 개념이 아니라, 서로 엮여 있으며 상호작용을 통해 우리의 삶을 만들어간다. 따라서 허상과 실상을 구분하기보다는 그 경계가 모호하고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인정하고, 이를 통해 삶을 보다 깊이 이해하려는 태도가 필요하다.
ㅡ 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