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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녘에 해 뜰 때








동녘에 해 뜰 때





장심리 산길을 따라 청람루에 오르면, 아침 햇살이 고요히 번져온다. 나무 가지 사이로 스며드는 빛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청람루의 처마를 어루만진다. 빠르게 번지는 그 빛줄기는 청람루를 더욱 눈부시게 물들인다.


서리가 내려앉은 밭 한켠, 비닐하우스가 유난히 반짝인다. 그 반짝임은 눈부신 빛이 아니라, 고요히 흐르는 눈물처럼 가슴 깊숙이 스며든다. 지금 이 순간조차도, 반짝이는 그 모습이 문득 눈물로 변해 흐른다.


해가 일찍 뜨는 동쪽 마을, 마을회관 끝자락에서 피어오르는 흰 연기. 그 옆으로 마을버스가 천천히 다가온다. 모퉁이를 돌 무렵이면 할머니들이 손마다 보따리를 들고 하나둘 모여든다. 제 갈 길을 떠날 준비로 소곤거리는 목소리가 아침 공기 속에 가만히 퍼진다.


시내 장터로 향하는 버스 안, 입담 좋은 할머니는 똬리 같은 보따리를 내려놓는다. 꾹꾹 눌러 담은 묵은 장보따리 사이로 스멀스멀 새어 나오는 고릿한 냄새. 그 냄새 속에서도 할머니들의 이야기는 끝이 없다. 고쟁이 주머니 깊숙이 찔러 넣은 종이 지폐와 몇 닢의 동전. 그 몇 닢의 온기가 굳은 손끝을 살며시 덥힌다.


그 따뜻함마저 삶의 무게가 되어, 오늘도 천천히, 그러나 묵묵히 흘러간다.


장심리 청람루에서
새벽을 깨우는 남자
안최호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안최호 작가의 글은 자연과 일상의 섬세한 관찰을 통해 삶의 본질과 흐름을 깊이 있게 탐구한다. 동쪽의 해가 뜨는 풍경과 함께 시작되는 이야기는 자연의 섭리와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조화롭게 담아내며, 작가가 추구하는 삶의 가치와 철학을 엿볼 수 있다.

첫 문단에서 청람루로 오르는 길과 아침 햇살의 묘사는 자연과 인간의 조화로운 관계를 강조한다. 나뭇가지 사이로 스며드는 빛이 청람루의 처마를 어루만지는 모습은 자연의 섬세함과 그 안에 깃든 평온함을 잘 드러낸다.
이는 작가가 자연의 흐름에 순응하며 살아가고자 하는 태도를 반영한다. 자연이 주는 고요한 아름다움 속에서 삶의 작은 움직임도 의미를 지닌다는 철학이 담겨 있다.

서리가 내린 밭과 반짝이는 비닐하우스의 묘사는 일상의 소소한 풍경 속에서도 삶의 무게와 감정이 스며들어 있음을 보여준다. 반짝이는 비닐하우스의 모습이 단순한 빛남이 아니라, 고요히 흐르는 눈물처럼 느껴진다는 표현은 삶의 고단함과 그 속에서의 감정의 깊이를 잘 드러낸다. 이는 작가가 삶의 고통과 슬픔마저도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받아들이는 태도를 보여준다.

마을회관과 장터로 향하는 할머니들의 모습은 공동체의 따뜻함과 삶의 연속성을 보여준다. 보따리와 묵은 장보따리에서 나는 고릿한 냄새, 그리고 주머니 깊숙이 찔러 넣은 종이 지폐와 동전은 세월의 흔적과 삶의 무게를 상징한다. 그럼에도 할머니들의 이야기는 끝이 없고, 손끝을 덥히는 몇 닢의 온기 속에서 삶의 따뜻함을 발견한다. 이는 작가가 삶의 무게와 고단함 속에서도 인간적인 온기와 희망을 놓지 않는 태도를 반영한다.

글 전체에 흐르는 고요하고 섬세한 묘사는 안최호 작가의 미의식이 자연과 인간의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아름다움을 찾으려는 데 있음을 보여준다. 자연의 변화와 일상의 소소한 풍경 속에서 삶의 의미와 가치를 발견하고, 그것을 담담하게 풀어내는 그의 글은 독자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요컨대, 안최호 작가의 작품은 자연과 일상의 조화 속에서 삶의 본질을 탐구하고, 고요함과 따뜻함, 그리고 삶의 무게마저도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키는 작가의 깊은 철학과 미의식을 잘 드러낸다. 이는 독자에게 삶의 흐름 속에서 조용히 자신을 돌아보고, 자연스레 스며드는 감정과 마주하도록 이끈다.




ㅡ 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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