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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모없는 것의 쓸모

김왕식







쓸모없는 것의 쓸모





사람들은 종종 쓸모 있는 것과 쓸모없는 것을 구분 지으려 한다. 효율성과 실용성이 강조되는 현대사회에서는 더욱 그렇다.

'쓸모없다'라고 여겨지는 것이 실제로는 깊은 의미와 가치를 지닐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종종 간과한다. 쓸모없음은 단지 당장의 필요에서 벗어난 상태일 뿐, 전혀 필요하지 않다는 의미는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더 깊은 사유와 감성을 자극하며, 삶의 균형을 이루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예를 들어, 나무에서 떨어진 낙엽을 생각해 보자. 겨울을 앞둔 가을날, 거리나 정원에 수북이 쌓인 낙엽은 치워야 할 쓰레기로 여겨지기 쉽다.

낙엽은 자연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땅에 쌓인 낙엽은 땅속 미생물의 먹이가 되고, 시간이 지나면 부식되어 땅을 비옥하게 만든다. 나뭇가지에서 떨어져 나온 잎사귀 하나조차도 결국엔 새로운 생명을 키우는 밑거름이 되는 것이다. 당장은 쓸모없어 보일지라도 자연의 순환 속에서 분명한 쓰임을 갖는다.

또 다른 예는 깨진 도자기 조각이다. 보통은 금이 가거나 깨진 그릇을 버리기 마련이다.

일본의 '킨츠기(金繼ぎ)'라는 전통 수리 기법은 깨진 도자기를 금이나 은으로 이어 붙여 새로운 아름다움을 창조한다. 상처 난 자리를 감추기보다는 오히려 그 흔적을 드러내어 고유의 미적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다. 깨짐이라는 쓸모없음이 오히려 작품에 깊이와 이야기를 더한다. 이처럼 단순히 고장이 났다는 이유로 무가치하다고 여긴다면 우리는 그 안에 숨겨진 새로운 가능성을 보지 못하게 된다.

삶의 경험도 마찬가지다.

때때로 우리는 실패나 실수, 혹은 고통스러운 기억들을 쓸모없는 과거로 치부한다.

그런 경험들이야말로 삶의 지혜와 성찰을 가져온다. 실패를 통해 우리는 한계를 깨닫고, 실수를 통해 더 나은 방향을 모색하며, 아픔을 통해 다른 이의 고통에 공감할 수 있는 마음을 갖게 된다. 과거의 아픔이 없었다면 지금의 성숙한 자신도 없었을 것이다. 결국 쓸모없어 보이는 경험이 우리를 단단하게 만들고, 더욱 깊이 있는 삶을 살아가게 한다.

문학과 예술 또한 쓸모없음의 가치를 잘 보여준다. 예술 작품은 실용적인 기능을 하지 않더라도 사람들의 감성을 자극하고 영혼을 울린다. 꽃이 피고 지는 것을 바라보며 우리는 생명의 순환과 덧없음을 깨닫는다. 이러한 감정과 사유는 당장의 생존과는 무관하지만,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는 데 필수적이다. 효율성만을 추구한다면 우리는 기계처럼 살아갈 뿐, 삶의 진정한 풍요로움을 느낄 수 없다.

심지어 잡초조차도 쓸모없다고 여겨지지만, 생태계에서는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잡초는 척박한 땅에서도 끈질기게 뿌리를 내리며 토양을 보호하고, 다양한 곤충과 동물의 서식지가 된다. 어떤 이는 잡초를 제거해야 할 대상으로 보지만, 자연은 그것마저도 균형을 이루는 요소로 삼는다. 인간의 기준으로 쓸모없다고 판단한 것이 자연에서는 반드시 필요한 존재인 것이다.

이렇듯 쓸모없음은 결국 '지금, 여기'에서만 그렇게 보일 뿐, 더 넓은 시각으로 보면 나름의 역할과 의미를 지닌다. 우리가 쓸모없다고 여기는 것들이야말로 때로는 삶을 더욱 풍요롭고 깊게 만들어준다. 그것들은 실용성의 틀을 넘어, 존재 그 자체로 의미를 가지며, 우리가 쉽게 놓치는 삶의 본질을 일깨운다.

쓸모없음의 쓸모를 이해한다는 것은 삶을 더욱 여유롭고 깊이 있게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모든 것을 효율과 결과로만 평가하기보다는, 존재 그 자체의 가치를 발견하는 태도야말로 진정한 삶의 지혜다. 낙엽이 흙이 되어 꽃을 피우고, 깨진 도자기가 새로운 아름다움을 만들어내듯, 우리 삶의 쓸모없어 보이는 순간들도 결국은 또 다른 시작이자 의미 있는 존재가 된다.



ㅡ 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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