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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당 가는 길

김왕식






초당 가는 길



박경숙



다산이 걸었던 길가에
나무뿌리들 켜켜이 뒤엉켜
오솔길을 잇는다.

*해배(解配)를 기다리며 찾아가는 유배지 길
질경이 빼곡하게 들어차 반겨
지금도 길이 푸르다.

푸른 새벽
맑은 옹달샘 물로 죽로차를 달인다.
한 모금에 눈 감고
또 한 모금에 귀를 연다

그래도 서러워 돌덩이가 가슴 누르면 정석(丁石)이라 새기며
가슴에 푸른 솔, 하나 키운다



*해배(解配) 유배가 풀려 상경하는 것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박경숙 시인의 시 '초당 가는 길'은 다산 정약용의 유배지였던 초당으로 향하는 길을 통해 역사적 의미와 개인적 성찰을 담아낸 작품이다. 시인은 전통 다도茶道를 통해 깨달음을 추구하며, 자연과 역사, 인간의 내면을 조화롭게 풀어낸다. 시의 전반적인 미의식은 고요하고 절제된 아름다움 속에서 깊은 사유와 감성을 담아내고 있다.

시의 첫 연에서는 다산 정약용이 걸었던 길가에 얽혀 있는 나무뿌리를 통해 역사와 자연의 시간적 층위를 겹겹이 쌓아내고 있다. "나무뿌리들 켜켜이 뒤엉켜 오솔길을 잇는다"는 표현은 유배라는 고난의 시간과 그 위를 덮는 자연의 평온함을 대비적으로 보여준다. 이는 시인의 단아한 성품과 고요한 사유가 잘 드러나는 부분이다.

"해배解配를 기다리며 찾아가는 유배지 길"이라는 구절은 다산의 고난을 직접적으로 환기시키지만, 그 길에 "질경이 빼곡하게 들어차 반겨"준다는 표현에서 자연은 인간의 아픔을 따뜻하게 품어주는 존재로 그려진다. 이는 박경숙 시인의 삶의 철학인 자연과의 조화, 고난 속에서도 평온함을 유지하는 자세와 맞닿아 있다.

"푸른 새벽 맑은 옹달샘 물로 죽로竹露차를 달인다"는 구절은 다도의 정갈한 분위기와 함께 차를 통한 내면의 수양을 보여준다. "한 모금에 눈 감고 또 한 모금에 귀를 연다"는 표현은 차를 음미하며 내면의 고요함을 찾고, 세상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다도의 깊은 정신을 담아낸다. 이는 작가가 전통 차를 다루며 추구하는 삶의 방식과 일맥상통한다.

"그래도 서러워 돌덩이가 가슴 누르면 정석丁石이라 새기며 가슴에 푸른 솔, 하나 키운다"는 구절은 고통을 회피하지 않고 가슴 깊이 새기며, 이를 통해 더 큰 성장을 이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푸른 솔은 시련 속에서도 꺾이지 않는 굳건함과 생명의 힘을 상징하며, 이는 시인이 추구하는 단아하고 고결한 삶의 태도를 잘 드러낸다.

박경숙 시인의 '초당 가는 길'은 역사적 배경과 자연, 다도의 정신이 어우러져 깊은 사유와 성찰을 이끌어내는 작품이다. 시인은 절제된 언어로 고난 속에서도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내면을 다스리는 태도를 보여준다.
이러한 미의식은 그녀의 단아한 성품과 다도를 통해 형성된 삶의 가치 철학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고통을 승화시키고 자연과 하나 되는 삶의 태도가 작품 전반에 흐르며, 독자에게도 깊은 울림을 전한다.


ㅡ 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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