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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글은
한강 작가의 '회복하는 인간'의 한 부분이다.
[ 늦가을 토요일 오후의 인파가 병원 앞 네거리에 술렁이고 있다. 오전에 내렸던 비는 완전히 그쳤다. 짧은 모직 치마에 레깅스 차림의 젊은 여자들, 농구공과 콜라 캔을 들고 교복 셔츠 소매를 걷어올린 고교생들이 당신의 몸을 바싹 스쳐 지나간다. 그들의 몸에서 진한 향수와 땀 냄새가 풍긴다. 화장품 샘플이 가득 담긴 플라스틱 바구니를 들고 형식적으로 눈웃음치는 아르바이트생을 피하려고 당신은 미리 고개를 수그린다. 공사 중인 지하도로 빠르게 걸어 내려간다. 휴대폰을 할인 판매하는 지하 매장을 지나친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계단들을 밟아 올라간다. 당신은 자꾸 잊어버린다. 방금 전까지 당신이 어디 있었는지, 무슨 치료를 받았는지, 지금은 어디를 향해 걷고 있는 건지 잊는다. 지하도 출구를 빠져나오자 당신은 걸음을 멈춘다. 활짝 문이 열린 전자 제품 매장에서 쏟아져 나오는 음악의 비트, 쉬지 않고 아스팔트를 뚫어대는 기계들의 먹먹한 소음에 넋을 빼앗긴다. 문득 정신을 차리고, 처방받은 항생제가 노트북 가방 앞주머니에 잘 들어 있는지 손끝으로 더듬어 확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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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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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작가의 문체상의 특징과
표현기법 등을 섬세하게 분석하여
노벨상을 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를
살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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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작가의 문체는 섬세한 묘사와 강렬한 감각적 표현으로 독자에게 깊은 몰입감을 선사한다. 그녀의 문장은 대체로 간결하면서도 세밀하며, 독자가 경험할 수 있는 일상적인 순간과 감정을 포착하여 문학적 깊이를 더한다. 특히 위 글은 한강 작가의 대표적인 문체적 특징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이러한 문체와 표현기법은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거론되는 이유 중 하나로, 이는 다음의 세 가지 주요 측면에서 확인할 수 있다.
1. 현실과 내면의 교차를 담아내는 섬세한 묘사
한강 작가는 외부 현실과 인물의 내면세계를 유기적으로 연결시키는 데 탁월하다. 위 글에서 그녀는 늦가을의 일상을 세밀하게 묘사하면서도 주인공의 혼란스러운 심리를 은유적으로 드러낸다. 예를 들어, 병원 앞 네거리의 술렁이는 인파는 단순히 도심의 풍경을 묘사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이 인파는 곧 주인공의 심리적 상태를 반영하는 장치로 기능한다. 인물의 혼란과 피로감은 "자꾸 잊어버린다"는 반복적인 표현과 함께, 주변의 빠르게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정체성을 잃어가는 모습으로 드러난다. 이는 독자로 주인공의 내면으로 깊이 들어가도록 유도한다.
또한, "짧은 모직 치마에 레깅스 차림의 젊은 여자들"이나 "농구공과 콜라 캔을 들고 교복 셔츠 소매를 걷어 올린 고교생들"과 같은 구체적인 묘사는 한강 작가의 현실 감각을 잘 보여준다. 이러한 구체적인 디테일은 독자에게 생생한 이미지로 다가오며, 이야기가 마치 독자의 눈앞에서 펼쳐지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2. 감각적 표현과 다층적인 상징
한강 작가의 문체에서 또 다른 중요한 특징은 감각적인 묘사를 통해 이야기에 생동감을 부여한다는 점이다. 위 글에서 "그들의 몸에서 진한 향수와 담배 냄새가 풍긴다"는 표현은 단순히 후각적 경험을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고, 도시적 삶의 복합적 층위를 드러낸다. 이 장면은 화려함과 피로감이 공존하는 현대적 풍경을 보여주며, 독자에게 물리적 감각 이상의 정서를 전달한다.
또한, "활짝 문이 열린 전자제품 매장에서 쏟아져 나오는 음악의 비트"와 "쉬지 않고 아스팔트를 뚫어대는 기계들의 먹먹한 소음"과 같은 묘사는 현대 문명이 만들어내는 불협화음을 강렬하게 전달한다. 이 소음은 단순한 배경음이 아니라 주인공의 혼란과 불안정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이는 한강 작가가 독자의 모든 감각을 자극하여 이야기 속으로 끌어들이는 방식을 보여준다.
3. 반복적 구조와 생략의 미학
위 글에서 한강 작가는 반복과 생략을 통해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당신은 자꾸 잊어버린다"는 구절은 반복적으로 사용되면서 주인공의 정서적 상태를 더욱 강화한다. 이 반복은 단조로움이 아닌 강렬한 리듬감을 형성하며, 독자에게 주인공의 혼란과 피로가 점진적으로 전해지게 한다.
또한, 한강 작가는 불필요한 설명을 생략함으로써 독자에게 해석의 여지를 남긴다. 예컨대, "지하도 출구를 빠져나오자 당신은 걸음을 멈춘다"는 장면에서 구체적인 이유나 상황을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독자가 그 공백을 채우며 인물의 심리를 스스로 유추하도록 만든다. 이 같은 생략의 미학은 독자로 이야기에 더욱 몰입하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이다.
4. 보편적 정서와 인간성 탐구
한강 작가는 인간의 보편적 정서를 탐구하는 데 탁월한 작가로 평가받는다. 위 글에서도 주인공이 겪는 혼란과 피로는 단순히 개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의 보편적 정서를 반영한다. 한강 작가는 이러한 보편성을 구체적이고 감각적인 이미지로 형상화하여 독자의 공감을 이끌어낸다.
특히, "처방받은 항생제가 노트북 가방 앞주머니에 잘 들어 있는지 손끝으로 더듬어 확인한다"는 구절은 인간의 연약함과 이를 극복하려는 몸부림을 섬세하게 포착한 장면이다. 이처럼 그녀의 작품은 인간의 본질적인 고통과 치유의 과정을 다루며, 이를 통해 독자에게 깊은 울림을 선사한다.
5. 노벨문학상을 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
한강 작가는 단순히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언어를 통해 독자의 감각과 감정을 동시에 자극하는 독창적인 문학세계를 구축해 왔다. 그녀의 문체는 미학적 완성도가 높을 뿐만 아니라, 현대 사회의 복잡한 문제를 탐구하는 철학적 깊이를 지니고 있다. 특히, 현실과 내면을 섬세하게 교차시키는 능력, 감각적 묘사와 다층적 상징을 통해 독자를 몰입하게 만드는 힘, 그리고 인간의 보편적 정서를 형상화하는 작가적 통찰력은 한강 작가를 노벨문학상 후보로 손꼽히게 하는 주된 이유다.
또한, 그녀의 작품은 단순히 한국 문학에 머무르지 않고, 세계 문학 독자들에게도 강렬한 공감과 메시지를 전달한다. 이는 그녀의 문학이 특정 문화적 경계를 넘어 보편적인 인간성을 탐구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한강 작가는 노벨문학상을 받을 자격이 충분한 작가로 평가받고 있다.
ㅡ 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