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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갯속을 걷다

김왕식









안갯속을 걷다





소엽 박경숙





안갯속 세상은 동화 같다.

몽환적夢幻的인 기운이 온 세상을 덮고,

길은 보이지 않아도

발걸음은 자연스럽게 나아간다.


숲 속에 아침 해가 비친다.

안개가 빚어낸 신비로운 빛의 커튼 사이로

햇살은 부드럽게 스며든다.

그 빛은 내 얼굴을 감싸고,

가녀린 나뭇잎마다 맺힌 이슬방울에

희미한 무지갯빛을 새긴다.


그 속을 걷는다.

발아래 부드러운 흙길이 느껴지고,

새들의 노랫소리가 안개의 베일을 찢고

귓가에 속삭인다.

모든 것이 고요하면서도 생동감이 넘친다.


아침 해는 내 발걸음을 쫓는다.

따스함이 등을 밀어주고,

마치 투명한 손에 이끌리듯 걸음을 옮긴다.

가끔 뒤돌아보면 안개 너머에서

아침 해가 나를 바라보며

살짝 웃는 듯하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걸까?”

그 따스한 빛은 말없이 나를 비춘다.

아마도 속삭이는 듯하다.

“천천히, 그러나 잊지 말고 걸어라.”

그 빛 속에서 내 마음에 새겨진

길을 발견한다.


안갯속 세상은 몽환적이지만,

그 안에서도 삶은 여전히 흐르고 있다.

새벽의 찬 공기,

햇살의 따스함,

땅의 촉감.

그 모든 것이 나를 채우며

새로운 하루의 시작을 예감하게 한다.


다시 발걸음을 옮긴다.

안개는 천천히 흩어지고,

숲은 본래의 모습을 드러낸다.

그 순간,

이미 안갯속에서

삶의 한 조각을 건져 올렸다.

그것은 내 안에서

은은히 빛나고 있다.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소엽 박경숙 작가의 글 안갯속을 걷다는 삶의 내밀한 성찰과 자연 속에서 발견되는 경이로움을 담아내고 있다. 작가 특유의 온화한 성품과 단아한 미적 감각은 글 곳곳에 드러나며, 독자에게 따뜻한 위로와 평안을 선사한다.

그녀가 추구하는 다도茶道의 철학과 삶의 가치관이 작품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있으며, 이는 단순한 문학적 표현을 넘어, 삶의 태도와 내적 아름다움에 대한 통찰을 전달한다.


박경숙 작가의 삶의 철학은 느림과 깊이에 있다. 안갯속을 걷는 행위는 비유적으로 인생을 나타내며, 불확실성과 모호함 속에서도 차분히 나아가야 함을 보여준다.

이는 다도의 정신, 즉 차분하고 겸허한 태도와 맥락을 같이 한다. 안갯속에서 길이 보이지 않아도 발걸음을 내딛는 모습은 그녀가 인생의 과정 속에서 조급함보다는 고요함과 균형을 중시한다는 점을 잘 드러낸다.


또한, 작품에서 자연의 요소들—안개, 햇살, 흙길, 새들의 노래—은 인생의 다양한 순간과 감각을 상징하며, 이를 통해 작가는 생동감 넘치는 세계와 깊은 정서를 전달한다. 자연의 소리를 듣고, 빛을 느끼며, 흙의 촉감을 통해 연결된 인간의 감각은 작가가 삶을 얼마나 섬세하게 관조하는지 보여준다. 이는 그녀가 가진 단아하고 우아한 미적 감각의 표현이기도 하다.


안갯속을 걷다는 독자로 일상의 소소한 순간에서 삶의 의미를 발견하게 한다. 몽환적夢幻的인 안갯속 세상을 묘사하며, 작가는 독자에게 삶의 노정 속에서 느림의 미학을 깨닫게 하고, 천천히 그러나 꾸준히 나아가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이는 그녀가 가진 삶에 대한 겸허한 태도와 인간 존재에 대한 긍정적 인식을 투영한 것이다.


박경숙 작가의 미의식은 단순한 자연의 관찰을 넘어, 자연과 인간이 조화를 이루며 만들어내는 삶의 총체적 아름다움에 있다. 그녀의 글은 단순한 묘사를 넘어 독자의 내면에 깊은 울림을 준다. 이는 다도를 통해 추구하는 내적 평화와도 일맥상통하며, 그녀의 작품이 단아하고 우아한 품격을 지닌 이유이기도 하다.


요컨대, 안갯속을 걷다는 소엽 박경숙 작가의 삶의 가치철학과 미의식이 담긴 작품으로, 독자에게 삶의 아름다움과 여유로움을 깨닫게 하는 소중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ㅡ 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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