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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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모순, 그 속에 담긴 우리의 삶
우리 언어생활 속에 자리 잡은 모순된 표현들은 생각보다 많다. 이들은 마치 오래된 나무의 옹이처럼 일상에 녹아들어 별다른 의문 없이 쓰인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모순성은 때로 당황스럽기까지 하다. 그중 대표적인 예가 ‘안전사고’와 ‘피로회복제’라는 표현이다. 안전사고란 말은 안전한 상태에서 사고가 발생한다는 뜻으로 보인다. 안전한데 어떻게 사고가 날 수 있을까? 사고가 발생했다는 순간, 안전은 이미 깨진 것이 아닐까? 이 표현을 처음 접한 사람이라면 안전과 사고라는 상반된 개념이 한 단어에 묶인 이유를 쉽게 납득하기 어려울 것이다.
마찬가지로 ‘피로회복제’라는 말도 흥미롭다. 회복이란, 좋지 않은 상태에서 원래의 상태로 돌아간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피로회복제란 약을 먹고 나면 피로한 상태로 다시 돌아간다는 뜻일까? 피로를 느끼지 않도록 돕는 약을 가리키고자 했다면 차라리 ‘피로해소제’라고 부르는 것이 더 적절하지 않을까? 이처럼 단어 하나를 깊이 들여다보면 무심코 지나쳤던 모순들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건강 회복’이라는 표현을 떠올려 보자. 이 말은 건강을 잃은 상태에서 다시 건강한 상태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회복이란 원래의 상태로 복귀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피로해소’란 말이 사용되는 방식은 다르다. 피로를 원래 상태로 되돌린다는 뜻이 아니라, 피로를 완화하거나 없앤다는 뜻으로 사용된다. 결국 이 표현은 단어의 본래 의미와는 다른 방식으로 쓰이고 있는 셈이다. 이런 사례들은 우리의 언어생활 속에 깊이 뿌리내린 관습적 표현들이 얼마나 무의식적으로 사용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러한 모순적 표현들이 왜 생겨났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면, 언어의 본질에 대한 흥미로운 통찰을 얻게 된다. 언어는 본래 사람이 살아가는 환경과 사회적 맥락 속에서 끊임없이 변화하고 발전하는 도구다. 처음에는 논리적으로 정확한 표현이었을지 몰라도, 시간이 지나면서 의미가 축약되거나 사용의 편의에 따라 달라지면서 본래의 뜻과는 어긋나는 표현들이 만들어질 수 있다. 또한, 사람들이 대화를 나누는 과정에서 직관적으로 이해하고 사용하는 방식이 더 중요하게 작용하면서 의미의 모순은 큰 문제로 여겨지지 않게 된다.
‘안전사고’와 ‘피로회복제’와 같은 표현은 우리 삶에 깊이 스며든 언어적 관습의 일부분이다. 이 표현들이 모순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음에도 사람들은 이를 의식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이러한 현상은 언어가 단순히 논리적인 도구가 아니라, 사회적 합의와 관습의 결과물임을 보여준다. 언어는 우리가 생각하는 대로 세상을 표현하는 동시에, 우리가 언어를 통해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을 형성한다. 모순적 표현의 존재는 우리 언어가 완벽하지 않음을 드러내지만, 이는 곧 언어의 유연성과 풍부함을 의미하기도 한다.
결국, 중요한 것은 이런 모순된 표현을 무조건 배척하기보다는, 이를 통해 우리의 언어가 가진 특성을 이해하고, 필요하다면 더 나은 표현을 고민하는 태도를 가지는 일이다. 언어는 우리의 사고와 생활을 반영하는 거울이다. 그러니 그 거울에 비친 모순조차도 우리의 삶의 한 단면으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ㅡ 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