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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 축복과 고단함의 이중주

김왕식









명절, 축복과 고단함의 이중주







명절은 한 해 중 가장 기쁘고 축복된 날이다. 그 기쁨의 이면에는 보이지 않는 고단함과 희생이 존재한다. 어릴 적에는 명절이 오기 며칠 전부터 들뜬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맛있는 음식을 기대하며, 서울에서 내려오는 친척들의 방문을 손꼽아 기다리고, 새 설빔을 입고 세배를 한 뒤 세뱃돈을 받는 설렘은 명절의 묘미였다.
그때는 몰랐다.
가족들의 웃음 뒤에서 한숨을 삼키며 명절 음식을 준비하던 어머니의 고단함을.

명절을 앞둔 어머니의 모습은 언제나 분주했다. 아궁이 앞에 쪼그리고 앉아 불을 때며, 손끝이 얼어붙을 정도로 정성껏 음식을 마련하던 모습. 손이 갈라지고 검게 그을린 어머니의 손은 명절의 기쁨을 떠받치던 희생의 상징이었다. 명절이 끝난 뒤에는 어머니는 또다시 얼음이 꽁꽁 언 개울가로 향했다. 축제의 흔적으로 더럽혀진 옷가지들을 빨기 위해서였다. 물에 손을 담그며 추위를 이겨내던 어머니의 모습은 이제도 선명하다. 그 얼굴에 드리운 주름에는 어머니가 짊어진 고단함과 희생이 새겨져 있었다.

지금의 주부들도 다르지 않다. 현대에는 '명절 증후군'이라는 이름까지 붙었다. 가족들에게는 행복과 즐거움을 주는 명절이지만, 주부들에게는 일상 이상의 부담을 안기는 날이기도 하다. 차례 음식 준비와 설거지, 친척들 접대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역할을 주부들이 떠안는다. 명절을 기쁘게 맞이해야 할 날이 오히려 지친 얼굴과 허리 통증으로 얼룩지게 된다.

어쩌면 우리는 명절의 본질을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할 때다. 전통은 중요하다.
전통을 지킨다는 이유로 누구 한 사람의 희생이 강요된다면, 그것은 이미 균형을 잃은 명절이다. 명절은 단지 차례상을 차리고 음식을 나누는 것에만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명절의 의미는 가족과 함께 기쁨을 나누고 서로를 위로하며 한 해를 감사히 되새기는 데 있다.

조상님들께 올리는 차례상도 중요하지만, 그 차례상이 누구의 피땀으로 이루어졌는지를 먼저 돌아보아야 한다. 차례상이 단지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주부들을 혹사시키는 이유가 되어서는 안 된다. 조상님들도 기쁘고 행복한 얼굴로 음식을 준비한 가족들의 차례상을 더 반기실 것이다. 우리는 종종 전통을 유지하기 위해 모든 것을 동원하는데, 그 과정에서 진정한 명절의 의미를 잊는 경우가 많다.

물론 명절은 기쁜 날이어야 한다.
그 기쁨은 모든 가족이 공평하게 누려야 한다. 명절 준비를 함께 하고, 음식을 나누며, 웃음과 대화를 통해 가족 간의 유대를 다져야 한다. 그런 명절이야말로 조상님들께도 기쁨이 되고, 우리 스스로에게도 행복한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명절의 전통을 유지하되, 그것이 누군가의 희생 위에 세워진 것이 되지 않도록 지혜롭게 조율할 필요가 있다. 주부들이 과도한 부담을 느끼지 않고도 가족과 함께 명절의 기쁨을 나눌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각자 음식을 한두 가지씩 나누어 준비하거나, 차례 음식을 간소화하여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형태로 바꾸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명절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모든 가족이 서로를 배려하고 이해하며, 함께 나누는 즐거움을 느끼는 것이다.

명절은 분명 축복받은 날이다.
그 축복은 누군가의 희생 위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나눌 수 있을 때 비로소 완전해진다. 이번 명절에는 한 번쯤 멈추어 서서 어머니의 손길과 숨겨진 고단함을 떠올려 보자.
함께 나누고 준비하며 웃음을 채워 가는 명절을 만들어 보자. 진정한 명절은 그곳에 있을 것이다.



ㅡ 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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