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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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시인 임보선
멀어진 만큼
물러선 만큼
사랑한 만큼
분명한 거리
좁혀질 것 같은데
금이 간 틈새로 자꾸만 가라앉는
보이질 않는 이 어두운 무게
어쩌랴
온몸 찔러대는 가시는
그림자에 박아두고
서럽게 떨며 돌아서는 이 마음
들키지나 말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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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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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시인 임보선 작가의 시 '마음'은 인간 내면의 상처와 거리감을 섬세하게 탐구하며, 삶의 가치와 철학을 담아내는 그의 문학적 미의식이 잘 드러난 작품이다.
그는 이 시를 통해 관계 속에서의 거리와 상처, 그리고 이를 극복하려는 의지를 고요하면서도 강렬한 시어로 풀어내며 독자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이 시에서 임보선 시인의 철학적 관점은 관계의 본질과 고통을 인정하고 이를 성찰하려는 태도에 있다. ‘멀어진 만큼, 물러선 만큼, 사랑한 만큼’이라는 구절은 관계 속에서의 거리와 사랑의 깊이를 냉철하게 계산해 보는 듯한 정서를 드러낸다.
이는 단순한 고통의 기록이 아니라, 이를 객관적으로 관조하려는 시인의 성숙한 시선이라 할 수 있다. 사랑이란 단순히 가까움이나 열정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으며, 거리감 속에서도 존재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금이 간 틈새로 자꾸만 가라앉는 보이질 않는 이 어두운 무게’라는 표현은 인간관계에서 느껴지는 고통의 실체를 심도 있게 드러낸다. 이 어두운 무게는 보이지 않지만 명확하게 느껴지는 존재로, 시인의 삶의 가치관에서 고통 또한 삶의 중요한 일부임을 반영한다.
그는 고통을 외면하거나 제거하려 하지 않고, 오히려 이를 받아들이며 자신의 존재를 성찰하는 방식을 선택한다. 이러한 자세는 임보선 시인의 철학적 깊이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또한, ‘온몸 찔러대는 가시는 그림자에 박아두고’라는 구절은 고통의 대상을 밖으로 투영하고 자신을 보호하려는 노력을 상징한다. 가시와 그림자는 내면의 고통을 외부화한 이미지로, 이 시는 고통을 인정하면서도 이를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를 함축적으로 드러낸다.
이는 그의 작품 전반에서 나타나는 미학적 특징으로, 고통과 상처를 단순히 비극적으로 묘사하지 않고 이를 수용하며 극복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서럽게 떨며 돌아서는 이 마음, 들키지나 말아야지’는 상처받은 자의 고독과 결연한 의지를 동시에 담아내며, 시인의 인간관과 감수성을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자신의 약함을 숨기고자 하는 마음은 우리 모두의 보편적인 감정이며, 이를 섬세하게 형상화한 점에서 임보선 시인의 시적 표현력이 돋보인다.
임보선 시인의 작품은 삶의 본질을 탐구하며, 관계 속에서의 상처와 회복, 그리고 인간 내면의 복합적인 감정을 밀도 있게 담아내고 있다. 그의 시에는 고통 속에서도 희망을 찾고자 하는 긍정적 태도와, 이를 담담히 수용하려는 철학적 깊이가 녹아있다. 이는 그의 미의식을 반영하며, 독자들에게 감정적으로 공감하고 사색할 여지를 제공하는 문학적 가치를 부여한다.
ㅡ 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