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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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심리의 겨울, 봉황의 날갯짓
최호 안길근
장심리 청람루에 눈이 수북이 쌓였다. 발을 디딜 때마다 푹푹 빠지는 소리가 귀에 닿는다. 쌓인 눈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 비닐 천막이 주저앉고, 그 틈새에는 고드름이 길게 매달려 있다. 무심한 듯 제멋대로 자란 고드름은 어느새 키만큼 길어졌고, 얼어붙은 세월처럼 푸른빛을 머금고 있다.
눈 덮인 산길을 내려오는 산꿩 한 마리. 녀석은 이곳저곳을 뒤지며 먹이를 찾고 있다. 인기척을 느낀 순간, 화들짝 놀라 황급히 날갯짓한다. 펼쳐지는 날개의 웅장함은 마치 봉황이 승천하는 듯하다. 흰 눈을 털어내며 하늘로 비상하는 모습이 장관이다.
불현듯 친구 청람 선생의 발걸음이 떠오른다. 몇 달 전, 이곳을 함께 찾았던 그날. 소복이 쌓인 낙엽 위로 걸음을 맞추던 시간이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문자 톡만 울릴 뿐이다. 예전처럼 함께 거닐던 모습은 어디에도 없다. 문득, 산 너머에서 불어오는 바람 소리가 들린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귀를 기울인다. 장심골을 스치는 바람에 친구의 기척이라도 묻어 있을까.
청람루에 홀로 선다. 발 밑엔 눈이 여전히 깊고, 고드름은 흔들리고 있다. 산꿩이 날아오를까 싶어 하늘을 올려다보지만, 이미 사라진 뒤다. 봉황이 떠난 하늘에는 오직 하얀 겨울바람만이 흐를 뿐이다.
새벽을 깨우는 남자
장심골 청람루에서
최호 안길근